[Verleugnung]의 글188 콩 심은 데 콩 난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모종의 비난이 섞여 있다. 이런 말을 듣게 될 사람을 떠올렸을 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못난 아들을 둔 아버지' 따위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결함 있는 콩을 낳았다는 비난은 항상 그 스스로도 결함을 가진 콩에게로 돌려지기 마련이고, 그렇게 결함 있는 자들을 향한 비난의 굴레는 돌고 또 돈다. 그런데 이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에서 항상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은 '콩'에 집중하느라 '데'라는 것을 잊곤 한다. '데'란 말하자면 토양이다. 학문의 발전에도, 문화의 융성에도 언제나 이 토양이라는 것이 중요할진대, 인간의 됨됨이는 오죽하겠나. 콩이 자랄 만한 '데'가, 그 토양이 제공될 때에야 비로소 콩이라는 것이 나온다. 그리고 좋은 콩은 .. 2021. 4. 28. 위화감 위화감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선생님들이 '위화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그건 정말 한국에서만 나올 법한 그런 개념이었다. 얘야 너 그렇게 비싼 운동화 신고 다니면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다른 걸 신고 오렴. 그런 비싼 문구는 학교에 들고 오는 게 아니란다... 시대가 바뀌면서 그런 단어는 사라진 것 같다. 되도 않는 국가적 이데올로기의 냄새가 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이제는 그런 걸 신경쓸 정도로 심각한 가난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하게 되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분명 우리는 남의 시선보다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더 존중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우리가 위화감만 없앤 게 아니라 '눈치껏'이라는 개념까.. 2021. 4. 23. 정신과 의사의 화용론 정신과 의사 일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화용론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 사람은 왜 이 말을 하고 있는가? 왜 하필이면 지금 이런 말이 나오는가? - 매번 대화를 할 때마다 이런 것들에 신경을 쓰다보니 표현된 문장의 너머로 자꾸만 눈길이 가게 된다. 말해진 것보다는 말해지지 않은 것, 말보다는 말의 주변을 더듬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인간이 표현하는 것들의 범주 안에서 말이 얼마나 미미한 역할을 담당하는지 깨닫곤 한다. 타인을 대할 때 말에 얽매이다보면 자꾸만 소통이 어긋나는 경험을 하지 않는가. 그건 당신이 말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말의 근본적인 성격 때문에 그런 것이다. 언제나 말해진 것의 너머를, 말해진 것과 말해진 것의 사이를 바라볼 지어다. 2021. 4. 20. 백 투 더 숙명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되지 않아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닌 나 자신이 되려는 것처럼 고단한 일도 없다. 우리는 왜 얼룩말이면서 사자가, 반대로 사자이면서 얼룩말이 되고 싶어하는가. 이럴 때면 숙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곤 한다. 숙명은 분명 체념과 다르다. 체념은 얼룩말을 열등한 것으로 만들지만 숙명은 나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얼룩말을 살아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체념은 아예 일을 못하게 만들지만, 숙명은 자기 수준에 맞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만든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분명 자기 생겨먹은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일수록 일을 쉽게 쉽게 처리하기 마련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수두룩한 번아웃의 사례들이 숙명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연결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2021. 4. 20.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4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