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72 외화면 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경험이라 기록으로 남겨본다. 따님 방에는 핸드폰 공기계가 하나 놓여 있다. 일종의 cctv로 쓰기 위해서다. 며칠 전부터 잠자리를 분리시키기 시작했는데, 만약을 대비해 카메라를 설치해둔 것. 실제로 집에서 화면을 보는 일은 자주 없다. 울음 소리가 들리면 바로 달려가면 되기 때문. 오히려 출근하고 나면 가끔씩 궁금함에 이끌려 화면을 열어보곤 한다. 물론 낮 동안 아이는 주로 거실에 나가 있기 때문에 화면에 무엇이 비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빈 화면을 내가 한참이나 들여다보곤 한다는 점이다. 그 안에 묘한 쾌감 같은 것이 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감정 같은 걸 느낀다. 바쟁은 외화면(hors-champ)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그는 영화에서 .. 2021. 12. 24. 애도 자체를 위하여 애도 자체를 위하여 그제 아내가 악몽을 꾸었단다. 꿈 속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고, 아내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차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려 했더니 차가 없어졌는데, 차와 함께 아기도 없어졌다고. 이후 꿈 속의 아내는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간 광인이 되었다고 한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고 아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우린 정말 미쳐버리겠지?"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내는 그런 말은 입 밖으로도 꺼내지 말란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다가 순간, 아기가 죽는 것보다 오히려 아기가 실종되는 게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실종되고 나면 그 부모는 평생 희망을 놓지 못하고 아이를 찾아 헤맨다고 들었다. 전에도 들었던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2021. 12. 15. 군대의 순기능(?)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상담 팁이랄 게 하나 있어서 소개해본다. 상담할 때는 '이 사람의 주된 갈등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핵심 갈등을 파악해야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과거력에 대한 청취가 필요하고, 따라서 지난한 시간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만약 상대방이 남자라면 이걸 효과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군대 생활이 어땠는지 묻는 것이다. 이건 아직 짧은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만, 내가 봤던 사람들 대부분은 군대에 있을 때 자기만의 핵심 갈등이 터져나왔던 것 같다. 가령 거세공포가 핵심갈등이었던 사람은 십중팔구 선임으로부터 불안감 같은 걸 경험했다.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이 문제였다면 똑같.. 2021. 11. 9. 타협의 미덕 타협의 미덕 흔히들 '타협'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한다. 가령 기존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안 한사람을 보고 우리는 그가 타협을 했다고 말한다. 결국 타협이라는 개념은 소극적으로 규정된다. '~~이 아닌' 어떤 상태에만 잔여적으로 붙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타협은 결코 소극적인 규정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역동적인 무의식이 언제나 타협을 향해 나아간다고 본다. 다양한 무의식적, 본능적 요구들이 서로를 주장하며 나댈 때, 우리는 그것들 사이를 교통정리 해줌으로써 적절한 타협의 지점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꼭 무의식에서만 타협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미덕이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꿈에 매달리는 사람, 가족을 내팽겨치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 .. 2021. 10. 27. 이전 1 2 3 4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