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72 아기를 기다린다는 것 기다림에도 종류가 있다. 군대 간 아들을 둔 어머니의 기다림, 롱디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의 기다림,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 백마 탄 초인에 대한 기다림 등등. 그런데 이 기다림들에도 공통점이랄 것은 있다. 모두 현재 부재하는 대상, 이 곳에 없는 대상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 기다림이라는 감정은 그 부재의 대상이 곧 임박한 상태에서 더 극적으로 풍성해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그런 경험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워하던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 직후부터, 입국 출입문을 통해 카트를 끌고 들어오는 그 순간 까지의 그 사이 말이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그리워하던 가족의 얼굴을 보게될 때의 그 환희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만남의 장소로서 공항이라는 장소가 갖는 묘미는 바.. 2021. 7. 22. 타인의 자살 충동에 윤리적으로 대처하기 "나는 나를 포기했다니까요? 왜 퇴원하지 못하게 놔두는 거에요!" 아이가 울며 소리친다. 자살충동을 경험하는 환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들을 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특히 아이들이 '내가 나를 포기했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말을 할 때는 종종 말이 막힌다. 말이 막히는 것은 사실 내 개인 신념에서 연원하는 부분이 많다. '왜 사느냐?'는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된 답을 내려본 적이 없다.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니고 무신론자이기에 더 그런 면도 있었다.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뿐이다.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니, 최대한 즐기면서 살면 그만이다. 아니면 바쁘게 사는 것도 괜찮다. 일을 하고, 뭔가에 몰입을 하고, 사회 속에서 기능이.. 2021. 6. 21. 반복 과거가 현재에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반복은 항성 여기에서 지금 행해지고 있다. 그저 무수하게 피어나는 운동인 것이다. 철학이라는 것이 단순히 플라톤의 반복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끊임없이 동일한 실수가 발생하는 것도, 어떤 시간이나 어떤 장소에나 거기에는 예수의 역할, 자캐오의 역할을, 유다의 역할을, 베드로의 역할을 하는 자가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연극은 반복해서 상연될 뿐이다. 그러다보니 누구에게나 운명이랄 것이, 그 자신이 반복해야 할 숙명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에서 벗어나려 해봤자 소용 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운명은 대놓고 밥상에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뒤져서 찾아내고 발견해서 입어야 하는 옷이다.. 2021. 5. 29. 들뢰즈의 마조히즘 나는 를 갖고 석사논문을 썼다. 당시 일종의 들뢰즈 빠돌이였기 때문에, 당연히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해서 썼던 것 같다. 근데 지금 와서 다시보면, 그는 그 책을 통해 기를 쓰고 정신분석학을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어떤 면에서 지극히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 매여 있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아직은 좀 정신분석학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같다고 해야 하나. 들뢰즈는 프로이트가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분석한 방식을 비판하면서, 결국 그가 지독히도 아버지-어머니-아들의 삼각형 구도에 매여 있다고 말한다. 남성 마조히스트는 여성에게 자신을 때려달라고 하는데, 정신분석학은 이 '때리는 여성'을 '아버지의 치환된 모습'으로 간주하면서 과도한 해석적 무리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때리는 사람을 아버지의.. 2021. 5. 29. 이전 1 2 3 4 5 6 7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