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72 진료라는 현상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병원에서의 진료라는 게 뭐 딱 병원에 가서 의사 만나고 약 처방 받고 상담받고 하면 되는 거라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만... 사실 그게 그렇게 우리 머리가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벌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심리학에 보면 "깨진 창문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창문이 많이 깨진 동네는 점점 창문이 더 많이 깨지게 돼 있다는 건데, 쉽게 말해 관리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사람이나 장소 혹은 사물을 사람들이 덜 망가뜨리게 돼 있다는 겁니다. 근데 이 병원의 생태라는 것도 좀 그런 면이 있습니다. 제가 전공의로 수련을 받을 때 실명을 말할 순 없지만 참 나쁜 교수가 하나 있었어요. 그 사람은 의료급여 환자분들이 오시면 그렇게 차별을 많이 했었더랬죠. 레지던트들이 비싼 약을 처방하거나 뭐 입원을 시.. 2021. 5. 20. 오늘의 쓸데 없는 상념 정신분석학적인 개념의 틀로 보았을 때 나는 강박적인 (또 한편으로는 자기애적인) 성향에 속하는데, 나자신을 돌아볼 때면 항상 드는 의문이 있다. 강박적이라면 분석철학을 좋아해야 할 것 같은데 왜 나는 분석철학보다 현대대륙철학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확실히 분석철학 쪽에 빠지는 사람의 '결'과 현대대륙철학 쪽에 빠지는 사람의 '결'이라는 게 좀 다른 면이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쉽게 설명할수 있는 방법은, 내가 강박적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서 비강박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다보니 즉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다보니 대륙철학에 빠졌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외에도 나르시시즘이 관여했다는 둥 이런 저런 설명이 가능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OC-Narcissistic mer.. 2021. 5. 20.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 붓다에게 경의를 표하며 # 며칠 전 한국정신분석학회 춘계학회가 열려 참여하게 됐다. 연자 분 한 분은 분석가로 수련하면서 동시에 초기불교를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였는데, 사회자께서는 '불교 연구가를 분석학회에 초대한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닌 만큼 상당히 신선하다고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불교의 영역으로 빠져들게 되는 그런 경향이랄 게 있다. 대학원 시절에 어쩔 수 없이 동양철학 수업을 하나 이상 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의무감에 원효의 를 다루는 강의를 듣게 됐는데, 당시 적잖은 충격을 경험했었더랬다. 한국에 수용되고 발전되어왔던 불교 이론들을, 그리고 그것들을 통합하려 했던 원효의 사상체계를 둘러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이랬다. '아니 그 옛날 사람들이 마음의 본성에 대해 이토.. 2021. 5. 20. 콩 심은 데 콩 난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모종의 비난이 섞여 있다. 이런 말을 듣게 될 사람을 떠올렸을 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못난 아들을 둔 아버지' 따위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결함 있는 콩을 낳았다는 비난은 항상 그 스스로도 결함을 가진 콩에게로 돌려지기 마련이고, 그렇게 결함 있는 자들을 향한 비난의 굴레는 돌고 또 돈다. 그런데 이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에서 항상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은 '콩'에 집중하느라 '데'라는 것을 잊곤 한다. '데'란 말하자면 토양이다. 학문의 발전에도, 문화의 융성에도 언제나 이 토양이라는 것이 중요할진대, 인간의 됨됨이는 오죽하겠나. 콩이 자랄 만한 '데'가, 그 토양이 제공될 때에야 비로소 콩이라는 것이 나온다. 그리고 좋은 콩은 .. 2021. 4. 28. 이전 1 ··· 3 4 5 6 7 8 9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