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감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선생님들이 '위화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그건 정말 한국에서만 나올 법한 그런 개념이었다. 얘야 너 그렇게 비싼 운동화 신고 다니면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다른 걸 신고 오렴. 그런 비싼 문구는 학교에 들고 오는 게 아니란다... 시대가 바뀌면서 그런 단어는 사라진 것 같다. 되도 않는 국가적 이데올로기의 냄새가 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이제는 그런 걸 신경쓸 정도로 심각한 가난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하게 되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분명 우리는 남의 시선보다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더 존중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우리가 위화감만 없앤 게 아니라 '눈치껏'이라는 개념까지 없애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스타그램 같은 거울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그 거울을 본다는 점은 확실히 인식하면서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 거울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내 맘대로 내 일상을 올리는 게 뭐가 문제야?'라는 생각들이 판치게 된다. 그렇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눈치껏 행동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눈치껏 행동하면서도 충분히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위화감의 전통 중 좋은 면만 일부 복귀시키는 것도 좋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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