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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 붓다에게 경의를 표하며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5. 20.

 

# 며칠 전 한국정신분석학회 춘계학회가 열려 참여하게 됐다. 연자 분 한 분은 분석가로 수련하면서 동시에 초기불교를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였는데, 사회자께서는 '불교 연구가를 분석학회에 초대한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닌 만큼 상당히 신선하다고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불교의 영역으로 빠져들게 되는 그런 경향이랄 게 있다. 대학원 시절에 어쩔 수 없이 동양철학 수업을 하나 이상 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의무감에 원효의 <이장의>를 다루는 강의를 듣게 됐는데, 당시 적잖은 충격을 경험했었더랬다. 한국에 수용되고 발전되어왔던 불교 이론들을, 그리고 그것들을 통합하려 했던 원효의 사상체계를 둘러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이랬다. '아니 그 옛날 사람들이 마음의 본성에 대해 이토록 자세한 연구를 수행했다니!' 상당히 쓸모있는 개념도 많았는데, 임상의가 되고 나면 이런 개념들을 사용해서 환자들을 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서양 사람들에게는 이 불교 문화라는 게 그렇게 익숙한 것만은 아닌지 현대에 들어 상당한 불교 이론들이 서양 학문으로 수입되고 있으며, 정신의학 분야에서도 불교 이론을 접목한 다양한 이론적 틀과 치료 방식들이 등장하고 있다. 불교가 꼭 병리적인 정신을 치료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을 무명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도와준다는 면에서 치료적인 면이 있다.

 

# 치료의 관점에서 두 학문체계의 차이라 하면 이성의 개입 여부라고 볼 수도 있겠다. 불교에서는 (조금씩 계파마다 그 실천 방식은 다르지만) 대부분 관찰한 것을 그저 관찰만 할 뿐 거기에 집착하거나 관여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는다. 특히 위빠사나를 위시한 초기불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반면 정신분석학의 전통에서는 그러한 관찰된 내용을 내러티브화(서사화)해서 이성의 영역으로 옮겨가도록 교육받는다. 그런 것이 '해석(translation)'이라는 작업을 구성한다. '이드가 있던 자리에 자아가 있게 하라'는 프로이트의 언명이야말로 불교적 수행과 구별되는 정신분석학만의 고유한 자리를 지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두 체계 사이에는 유사한 면도 물론 있다. 이 유사점이야말로 치료에서 가장 근본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두 학문체계는 공통적으로 우리를 어떤 반성(Reflection)으로 이끈다. 유식불교가 일별한 정동과 마음상태의 종류들과 그 분류체계를 보다보면 (이것은 이성의 개입이 많이 들어간 방식이고, 그런 한에서 서양철학의 면모를 많이 닮았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이 강박적으로 체계화했던 교리내용을 본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데, 이런 체계화는 분명 반성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관찰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인 것이다.

 

# 이 반성이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데, 우리가 사태를 보다 더 적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가 되고 나서 내가 얻게 된 소득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가령 아내와 A라는 사건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을 때, 이전이라면 A라는 사건에 골몰하느라 아내와 나 사이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런 일이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옮겨가게 되고, A라는 전경의 뒤에 놓여 있을 배경에 계속해서 시선이 옮겨가게 된다. 그러다보면 표면적 인과관계를 넘어서 보다 포괄적이고 무수한 인과들의 체계 (불교라면 이것을 연기라고 불렀을 것이다) 속에 침잠하게 되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사태를 더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가령, 나는 아까전 아내에게 무심코 던졌던 B라는 말이 아내의 C라는 정동을 자극함으로써 결국 A라는 사태를 통해 '분노'로 표출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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