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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진료라는 현상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5. 20.

 

병원에서의 진료라는 게 뭐 딱 병원에 가서 의사 만나고 약 처방 받고 상담받고 하면 되는 거라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만... 사실 그게 그렇게 우리 머리가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벌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심리학에 보면 "깨진 창문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창문이 많이 깨진 동네는 점점 창문이 더 많이 깨지게 돼 있다는 건데, 쉽게 말해 관리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사람이나 장소 혹은 사물을 사람들이 덜 망가뜨리게 돼 있다는 겁니다.

 

근데 이 병원의 생태라는 것도 좀 그런 면이 있습니다. 제가 전공의로 수련을 받을 때 실명을 말할 순 없지만 참 나쁜 교수가 하나 있었어요. 그 사람은 의료급여 환자분들이 오시면 그렇게 차별을 많이 했었더랬죠. 레지던트들이 비싼 약을 처방하거나 뭐 입원을 시키거나 하면, (물론 대놓고 할 만큼 악마는 아니었습니다만) 슬쩍슬쩍 눈치를 줬거든요.

 

그거 밑에 사람이 윗사람 눈치를 어떻게 안 보겠습니까. 저야 뭐 그렇게 담력이 좋은 편은 아니니, 응급실에 그런 환자 분들이 오게 되면 아무래도 한 마디 더 해주고 치료 하나 더 해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어딘가 누락을 하게 되고, 시간도 덜 투자하게 되고 좀 그런 데가 있었어요. 입원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게 되구요. 물론 그런 상황이 변명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있더라도 떳떳하게 도덕적으로 살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심히 부끄러움을 느끼오니 부디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사옵... 아니 지금 그걸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고 아무튼

 

이게 지금 일하고 있는 병원의 원장님은 전혀 그런 눈치를 안 준단 말이죠. 제가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고 편안하게 진료를 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좀 병원 수입에 지장이 있다고 해도, 치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거든요. 그러다보니 (다른 직원분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 조차도 이게 아무래도 환자분들을 그들의 보험급여 형태와 상관 없이 공평하게 대하게 되는 면이 있단 말이죠. 저는 도덕적으로도 떳떳하고, 스스로 보람도 느끼는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창문을 깨기보다는 오히려 창문을 더 깨끗하게 닦는 그런 노력을 하고 있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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