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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철학] 연구1 – 추상적 욕구와 물리적으로 재현된 욕구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13. 9. 25.

욕망의 구조에 있어 우리가 간파해야 할 점.

욕망은 항상 충족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욕망이 항상 충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음으로 인해 야기되는 것들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

두 가지를 분류해야 한다. 추상적 욕망과 물리적으로 재현/충족된 욕구 (여기서 '충족'은 '완전한 충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충족'이라는 단어는 '충족하고자 하는 의도'를 의미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추상적 욕망은 머리 속에 떠오르는 욕망이다. 이를테면 '나는 물을 마시고 싶다'

하지만 욕망은 언제나 신체와 연계되어 있고, 신체적인 것을 매개로 해서만 충족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이 충족되기 위해 신체적인 것을 매개로 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테면 '목이 마르다'라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입 안으로 물이 들어가는' 신체적/물리적 현상이 매개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추상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체적/물리적 현상을 매개하는 과정에서 간극이 발생한다.

추상적 욕망은 '나는 물을 마시고 싶다'라는 형태로 제기된다. 이것은 질적인 특징을 띈다. 특정한 '강도'의 목마름이 발생한다.

그런데 물을 마시는 물리적 행위를 통해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 자체는 질적이 아니라 양적이다. 나는 특정한 '강도'로 물을 마실 수 없다. 나는 특정한 '양'으로 물을 마실 수 밖에 없다.

즉 특정한 강도의 욕구는 특정한 양의 물리적 형태로 충족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강도적인 욕구가 양적인 충족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환원 불가능한 간극이 발생한다.

A만큼의 강도의 욕구는 100이라는 양 만큼의 충족물로도 완전히 충족되지 않고 101이라는 양 만큼의 충족물로도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다.

충족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강도적인 욕구 자체가 '물'에 대한 욕구로 한정되지 않을 수 있다. 즉 '목마름'이라는 욕구는 '물' 뿐만 아니라 '콜라' 또는 '녹차'에 대한 것을 포괄적으로 지니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욕구를 해소하게 되는 과정에서 '콜라'나 '녹차'가 배제되고 '물'만이 선택된다. 이것은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배제와 선택이다. 우리는 물과 녹차와 콜라를 동시에 마실 수 없으므로.
  2. A만큼의 강도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물리적 물질을 매개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물리적 물질이라는 것은 (마시는 행위에 국한했을 때) 이를 테면 '컵'이나 '주발' 같은 것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컵'이나 '주발'같은 물리적 물질은 관념적인 것과 달리 '비교적 불변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나의 추상적 욕구는 지금의 욕구와 1초 뒤의 욕구가 강도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또한 동일하도록 '강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컵'이나 '주발'이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지금 담을 수 있는 양이나 1초 뒤에 담을 수 있는 양이 다르지 않다. (두 경우 모두 물을 꽉 채웠다고 생각하자) 또한 추상적 욕구와 달리 컵이나 주발에 담겨지는 물의 양은 '강제되는 측면'이 있다. 100ml의 컵에 102ml를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3. 여기서 반론이 가능할 수 도 있다. A만큼의 강도적 욕구가 102ml에 그나마 근접하다면, 100ml의 컵으로 물을 한번 마시고 난 뒤 다시 그 빈 컵에 2ml를 채워서 마시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100ml의 물 한컵을 마시고 난 뒤 우리는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느낀다'. 즉 처음에 102ml만큼의 욕구에 가까웠던 목마름도 물을 마시는 과정에서 100ml만큼의 목마름으로 다운사이징 될 수 있다. 아니, 다운사이징 '된다'.
  4. 업사이징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욕구는 80ml에 가까우나, 나의 손은 컵 안에 정확히 80ml만큼의 물을 담을 수 있을 만큼 정확하지 못하다. 이것은 물리적 세계의 한계다. 그렇기 때문에 80ml의 욕구든 90ml의 욕구든 종국적으로 모두 100ml 정도의 물을 마시게 된다.
  5.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언제나 이처럼 잉여적인 충족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80ml만큼의 욕구를 지니고 있던 자는 100ml의 물을 마시게 됨으로써 20ml만큼의 추가적인 물을 섭취하게 된다.
  6. 즉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딱 필요한 정도의 물'을 넘어서는 '잉여적인 물의 섭취'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추상적 욕구와 구체적으로 재현/충족된 욕구 사이의 근원적인 간극은 무엇을 야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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