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자본론을 읽다가

by verleugnung 2020. 8. 15.

자본론 2권 626p

 

이걸 보다 보면 노동자가 '중간에 껴서' '매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맑스에 따르면 아담스미스와 같은 기존 경제학자들은 국내의 자본이 유통하는 것을 등식화하기 위해 모든 것을 수입과 잉여가치로 환원하였다. 즉 국내의 총 사회적 자본은 모두 v+s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여기서 문제는 불변자본이 무시된다는 것인데, 맑스가 보기에는 국내 자본의 크기 중 불변자본이 매우 큰 역할을 차지한다. 스미스는 이런 불변자본 가치가 '결국 셈셈하면 차감돼서 없어진다'는 이유 때문에 마치 없는 것처럼 없애버리고 있는데, 맑스는 이 부분을 비판하고 있다.

 

스미스 같은 의견에 따르면 소비재원으로 쓰이는 돈은 그냥 소비되어 없어지고, 생산수단에 쓰이는 돈은 재생산에 이바지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가 쉬울 듯. 그러나 맑스에 따르면 I, II에서 지급된 임금은 서로 상호 교차하면서 매개를 거쳐 I과 II에서의 다양한 가치들을 실현한다. 그리고 I, II에서 지급된 임금은 결국은 I, II 분야 모두를 ‘원상태로 복귀’시킴으로써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원점으로 복귀시키는데 스미스는 이런 부분을 제대로 사유하지 못한다.

 

즉 단순히 개인들의 수입이 개인들의 지출과 등식관계를 맺음으로써 자본이 국민의 수입을 충족시켜준다는 식의 균형을 맺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I 부문과 소비수단을 생산하는 II 부문 사이에서 노동자가 '끼어서 매개됨으로써' I과 II 사이의 유통 흐름을 매개해준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은 부지불식 간에 자본의 성장과 흐름에 동참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고마운 노동자들 :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에 의하여 자본가들의 불변자본을 유지하여줄 뿐 아니라, 그들의 가변자본가치를 그것에 상당하는 상품형태로 새로 생산된 가치부분에 의하여 보충하여 주며, 또한 자기의 잉여노동으로 자본가들을 위해 잉여생산물의 형태로 있는 잉여가치를 제공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