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두 가지 존재 양상)
간혹가다 연예인들이 "앞머리를 잘랐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문장은 단지 단순한 사건을 표현하는 문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각보다 해독이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남성들은 이 문장을 오독하는 바람에 일반 여성들과 의사소통에 있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일단 분석에 앞서 앞머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해보도록 하자.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앞머리'라는 단어는 크게 다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 째로, '앞머리'는 단순하게 물리적으로 '앞통수에서 돋아나는 머리카락들'을 통칭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경우 길이 여부에 상관 없이 이마 근처에서 돋아나는 머리카락들은 모두 앞머리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 이런 의미의 앞머리를 편의상 '앞머리실체'라고 하도록 하자. '앞머리실체'의 특징은 그것이 어떤 길이를 가지든지 상관없이 그대로 '앞머리실체'로서 남아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앞머리'는 '이마 위를 덮고 있는 일군의 머리카락 뭉치'를 의미할 수 있다. 이 경우 앞머리는 개개의 머리카락을 의미하기보다는 머리카락들이 모여서 특정한 모양을 형성하고 있는 하나의 단일한 형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의 앞머리를 편의상 '앞머리뭉치'라고 하도록 하자. '앞머리뭉치'는 '앞머리실체'와 달리 단순히 '있거나 없을' 수 있다. 특정한 길이의 범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앞머리뭉치'는 생기기도 하고, 또 소실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앞머리를 자르다'라는 동일한 명제는 왜 남녀에 있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한 가장 흔한 분석은 '앞머리 실체'가 잘리는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her0111?Redirect=Log&logNo=150169622749) |
여자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이 길기 때문에 '앞머리실체'를 자르는 행위는 길었던 앞머리실체의 길이를 적당한 길이로 줄이는 역할을 하게 되고, 이것이 '앞머리뭉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여자들에게 있어 "앞머리를 잘랐다"라는 말은 "앞머리(실체)를 잘라서 앞머리(뭉치)를 만들었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남자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이 짧기 때문에 '앞머리실체'를 자르는 행위는 앞머리실체의 길이를 매우 짧게 만듦으로써 결국 이마를 덮고 있던 '앞머리뭉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남자들에게 있어 "앞머리를 잘랐다"라는 말은 "앞머리(실체)를 잘라서 앞머리(뭉치)를 없앴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정리하자면, 앞머리를 자르는 행위가 남자와 여자에게 있어 전혀 다른 결과를 야기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 간에 논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여성들에게 있어
앞머리(실체)를 길렀다 =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지 않고 있다
앞머리(실체)를 잘랐다 =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고 있다
이고,
남성들에게 있어
앞머리(실체)를 길렀다 =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고 있다
앞머리(실체)를 잘랐다 =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지 않고 있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위의 분석이 타당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다음과 같다는 것 : 남녀 모두에게 있어 공통적으로 '자르다'라는 행위의 목적어는 '앞머리실체'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일단 남성의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남자들에게 있어 "앞머리를 자르다"라는 문장이 나타나는 상황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야, 너 앞머리가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앞머리 좀 잘라라". 여기서 나타나는 '앞머리'가 '앞머리 실체'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에서 앞머리는 없애야 할 어떤 대상으로 인지되며, 따라서 '앞머리뭉치'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게 된다.이런 남성들의 의미체계 내에서 "앞머리를 자른다"라는 문장 속의 두 가지 의미체계는 모순 없이 화합하게 된다. 즉, 남성들에게 있어 '앞머리실체를 자르는'행위는 '앞머리뭉치의 소실' 즉, '앞머리뭉치가 잘려져 나가는' 의미와 일맥상통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앞머리를 자른다"라는 문장 내부에서 '자른다'의 목적어로서 '앞머리실체'와 '앞머리뭉치' 모두가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자. 당신이 여성이라면, "나의 앞머리를 잘랐다"라는 문장에서 의미하는 '앞머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보길 바란다. 이 '앞머리'라는 단어는 단순히 이마 위쪽으로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의미할 뿐인가? 즉, '앞머리'는 귀 뒤로 넘어가 있는 아주 길다란 '앞머리실체'까지도 포함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이마 위를 사뿐히 덮고 있는 귀여운 모양의 '앞머리뭉치'를 의미하는가? 필자가 몇 명의 여성들에게 물어본 결과, "앞머리를 잘랐다"라는 문장의 '앞머리'는 '앞머리뭉치'에 더 가깝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앞머리'라는 단어 안에 '앞머리실체'의 의미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앞머리'라는 단어 속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의미체계가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심각한 모순이 생기게 된다. 여성들 스스로가 "앞머리를 잘랐다"에서의 앞머리를 '앞머리뭉치'로 이해한다고 가정을 한다면, 이 문장은 심각한 논리적 오류를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앞머리뭉치'는 잘리는 순간 없어져 버린다. 잘릴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앞머리실체'일 뿐이다. 절대 헷갈리지 말자. 잘리는 행위에 의해 길이가 짧아지는 것은 '앞머리실체'이지 '앞머리뭉치'가 아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앞머리실체'를 자름으로써 '앞머리뭉치'를 형성할 수 는 있지만, 그것이 '앞머리뭉치를 잘랐다'라는 의미와는 모순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이 모순적인 구조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는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이렇다. 여성들에게 있어 "앞머리를 잘랐다"라는 문장은 "앞머리실체를 잘랐다"라는 문장과 "이것은 (자르고 난 뒤 생긴) 앞머리뭉치다"라는 문장이 짬뽕이 되면서 새롭게 형성된 관용어구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 때 (왜인지는 모르지만) 두 개의 문장이 혼합되어 축약되는 과정에서 '자른다'는 행위와 자르는 행위의 결과인 '앞머리뭉치' 이렇게 두 가지만 남게 되는데, 이것은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특이한 도치 구조를 구성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A를 잘랐다"라는 문장에서 A의 뭉치는 자르는 행위 이전이 존재해야만 한다. A가 이미 전제되어 있어야 이 A를 대상으로 자르는 행위가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발화구조에서는 '자르는' 행위의 결과인 '앞머리뭉치'가 A의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이상한 구조의 문장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이 이상한 문장은 여성들에게 전혀 이상하게 인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관용어구가 익숙하지 않다.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앞머리실체를 잘라서 앞머리뭉치를 만들었다"라는 문장을 표현할 일이 없게 되고, 그에 따라 그것을 굳이 "앞머리를 잘랐다"라고 축약하여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앞머리를 잘랐다"라는 문장은 남성들에게 있어 단순한 논리적 문장체계로서만 이해된다. 남성들은 '앞머리뭉치를 만든다'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앞머리를 자른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들은 "앞머리를 자르면 '앞머리뭉치'가 잘리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앞머리뭉치'가 없어지는 것인데, 어떻게 '앞머리뭉치'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고 묻는 것이고, 여성들은 "'앞머리를 자른다'라는 의미 안에서의 '앞머리'는 단순히 잘리고 난 뒤의 '앞머리뭉치'를 의미할 뿐이다. 잘리는 것은 '앞머리실체'이되 '앞머리뭉치'는 잘리지 않는다. 또한 '앞머리실체'가 잘림으로써 '앞머리뭉치'가 형성될 수 있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즉, 여성들에게 있어 "앞머리를 잘랐다"라는 문장 내에서 '앞머리실체'가 잘리는 것과 '앞머리뭉치'가 존재하는 것은 양립 가능하다. 반면 남성들에게 있어서는 "앞머리를 잘랐다"라는 문장 내에서 '앞머리실체'가 잘리는 것과 '앞머리뭉치'가 잘리는 것만이 양립 가능하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합니다
이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앞머리실체'와 '앞머리뭉치'의 개념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앞머리실체'라는 것은 양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를테면 1에서 100까지의 길이 상태를 가질 수 있는 개념입니다. 즉, 10만큼의 길이의 앞머리실체도 가능하고 40만큼의 앞머리실체도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머리실체'가 '자르다'라는 동사를 술어로 갖게 되면 '앞머리실체'는 여러가지 길이로 변형될 수 있습니다. 반면 '앞머리뭉치'라는 것은 단순히 이항적인 존재양식만 가질 뿐입니다. 그것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의 양태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자르다'라는 동사를 술어로 갖게 되는 경우 그것은 단순히 '없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머리'라는 단어를 '앞머리뭉치'로 이해한 경우, 그것은 '자르다'라는 동사와 접목되면 그것의 존재가 소실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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