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경험이라 기록으로 남겨본다.
따님 방에는 핸드폰 공기계가 하나 놓여 있다. 일종의 cctv로 쓰기 위해서다. 며칠 전부터 잠자리를 분리시키기 시작했는데, 만약을 대비해 카메라를 설치해둔 것.
실제로 집에서 화면을 보는 일은 자주 없다. 울음 소리가 들리면 바로 달려가면 되기 때문. 오히려 출근하고 나면 가끔씩 궁금함에 이끌려 화면을 열어보곤 한다. 물론 낮 동안 아이는 주로 거실에 나가 있기 때문에 화면에 무엇이 비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빈 화면을 내가 한참이나 들여다보곤 한다는 점이다. 그 안에 묘한 쾌감 같은 것이 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감정 같은 걸 느낀다.
바쟁은 외화면(hors-champ)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그는
영화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프레임 안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밖이라고 말한다. 프레임 안에서 규정된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 밖에서는 열린 상태로 계속해서 무언가 진행되거나 발생하기 때문.
어쩌면 이런 외화면스러운 느낌이 나에게 이상한 감정을 전달한 것은 아닐까. 영상을 보고 있다보면 저 멀리서 딸이 간헐적으로 우는 소리나 장모님이 아이를 어르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다. 아주 아득한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으로 말이다.
비어있는 침대를 비추는 이 화면은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대신 그 화면 밖에서 규정되기 어려운 (목소리들의 주체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 허공을 떠도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뭔가 화면을 보고 있다보면 내가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어쩔 때는 마치 내가 죽고 나서 하늘에 있는 동안 가족들이 잘 사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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