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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친근함이라는 가상 타파하기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10. 21.


사실 알고보면 추상적이고 사후적인 개념이지만 마치 원인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그런 개념들이 있다. 가령 '우울증'이라든지 (우울증이라는 것은 다양한 맥락들에서 나타나는 불편감들이 사후적으로 추상되었을 때 나오는 단어다) '화남', '친근함' 등이 그렇다.

이와 관련해 오늘 점심 식사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어서 끄적여본다. 새 직장(종합병원으로 옮겼다)에 온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점심 시간이 그렇게 뻘줌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의사 선생님들도 와서 조용히 식사만 하고 가시기는 한다. 근데 괜히 나만 신참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서로 간에 면식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오늘도 뻘줌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직 친근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구나. 언제쯤이면 그런 게 생길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갑자기 핵폭탄이 터지는 상상을 했고, 식당 안의 사람들이 결속하면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협동하는 상상을 했다. 

도대체 친근함이라는 건 무얼까. 확실히 전쟁통이랄지 난세 같은 시기에는 사람들끼리 더 친밀해지는 게 있다. 군대 동기가 그렇다고들 하지 않나. 의사 사회에도 그런 게 있다. 특히 교수가 지랄맞을 수록 의국 레지던트들 분위기가 좋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 (우리도 그랬다)

비슷한 걸 가지고 실험을 한 사람들도 있었더랬다. 가령 처음 만난 커플을 둘로 나눠서 한쪽 커플은 카페에서 차나 마시게 하고 다른 커플은 놀이동산에서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게 한다음, 각각이 서로간에 느낀 호감을 수치화하라는 둥 말이다. 결과가 어땠겠나? 당연히 놀이기구 탄 커플 쪽이 서로 간에 호감이 높았다.

연구자는 그걸 보고서, 놀이기구를 탔던 사람들이 당시에 느낀 흥분이나 두근거림을 이성에 대한 떨림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말하자면 이러저러한 요소들이 있었고, 그러한 요소를 '친근함'이라는 주관적인 개념으로 착각을 했고, 그래서 두 사람이 호감을 느꼈다 뭐 이런 것이다.

그렇지만 친근함은 그렇게 구성되는 게 아니다. 친근함이라는 주관적 개념이 따로 있고, 어떤 주관적인 생리학적 느낌이 그 친근함이라는 개념과 혼동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놀이기구를 함께 타면서 느껴졌던 제반의 경험, 그 경험이 통째로 사후적인 친근함을 만든 것이다.

내가 굳이 이런 구분을 짓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부지불식 간에 '순수한 친근함' 같은 것을 가정하면서, 전쟁통에 서로가 결속되는 것이나 의국에서 레지던트들이 친해지는 것 같은 것을 어떤 '순수하지 않은 친구관계'같은 것으로 격하시키곤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그런 순수한 친근함의 개념 같은 건 없다. 그건 마치 우리가 세상의 다양한 동그란 대상들을 관찰하면서 상상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완벽한 원을 상정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결론은, 어떤 사건 사고가 터져야만 나는 이 사람들하고 친해질 수 있겠다... 그 전까지는 그냥 나도 노력하지 않으련다... 라는 생각이 꼭 나의 소심함에서 기원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당한 근거가 있다!라고 변호하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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