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알고보면 추상적이고 사후적인 개념이지만 마치 원인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그런 개념들이 있다. 가령 '우울증'이라든지 (우울증이라는 것은 다양한 맥락들에서 나타나는 불편감들이 사후적으로 추상되었을 때 나오는 단어다) '화남', '친근함' 등이 그렇다.
이와 관련해 오늘 점심 식사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어서 끄적여본다. 새 직장(종합병원으로 옮겼다)에 온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점심 시간이 그렇게 뻘줌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의사 선생님들도 와서 조용히 식사만 하고 가시기는 한다. 근데 괜히 나만 신참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서로 간에 면식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오늘도 뻘줌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직 친근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구나. 언제쯤이면 그런 게 생길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갑자기 핵폭탄이 터지는 상상을 했고, 식당 안의 사람들이 결속하면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협동하는 상상을 했다.
도대체 친근함이라는 건 무얼까. 확실히 전쟁통이랄지 난세 같은 시기에는 사람들끼리 더 친밀해지는 게 있다. 군대 동기가 그렇다고들 하지 않나. 의사 사회에도 그런 게 있다. 특히 교수가 지랄맞을 수록 의국 레지던트들 분위기가 좋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 (우리도 그랬다)
비슷한 걸 가지고 실험을 한 사람들도 있었더랬다. 가령 처음 만난 커플을 둘로 나눠서 한쪽 커플은 카페에서 차나 마시게 하고 다른 커플은 놀이동산에서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게 한다음, 각각이 서로간에 느낀 호감을 수치화하라는 둥 말이다. 결과가 어땠겠나? 당연히 놀이기구 탄 커플 쪽이 서로 간에 호감이 높았다.
연구자는 그걸 보고서, 놀이기구를 탔던 사람들이 당시에 느낀 흥분이나 두근거림을 이성에 대한 떨림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말하자면 이러저러한 요소들이 있었고, 그러한 요소를 '친근함'이라는 주관적인 개념으로 착각을 했고, 그래서 두 사람이 호감을 느꼈다 뭐 이런 것이다.
그렇지만 친근함은 그렇게 구성되는 게 아니다. 친근함이라는 주관적 개념이 따로 있고, 어떤 주관적인 생리학적 느낌이 그 친근함이라는 개념과 혼동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놀이기구를 함께 타면서 느껴졌던 제반의 경험, 그 경험이 통째로 사후적인 친근함을 만든 것이다.
내가 굳이 이런 구분을 짓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부지불식 간에 '순수한 친근함' 같은 것을 가정하면서, 전쟁통에 서로가 결속되는 것이나 의국에서 레지던트들이 친해지는 것 같은 것을 어떤 '순수하지 않은 친구관계'같은 것으로 격하시키곤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그런 순수한 친근함의 개념 같은 건 없다. 그건 마치 우리가 세상의 다양한 동그란 대상들을 관찰하면서 상상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완벽한 원을 상정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결론은, 어떤 사건 사고가 터져야만 나는 이 사람들하고 친해질 수 있겠다... 그 전까지는 그냥 나도 노력하지 않으련다... 라는 생각이 꼭 나의 소심함에서 기원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당한 근거가 있다!라고 변호하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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