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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운동선수와 언어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7. 22.

 

이전에 청소년 관련 학회에 참석했다가 스포츠 정신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한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상당히 신선했는데, 그것이 소통에 대한 참신한 관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소위 운동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상담을 이끌어가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유로 거론되는 것들은 대부분 그런 친구들의 능력 결여에 초점을 둔다. 가령 집중력이 약하다든지,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못해봤다든지 등등...

그런데 이 교수님은 그런 것을 결여로 해석하기보다는 차이의 일종으로 해석하는 것 같았다. 그게 뭐 그리 새로운 내용이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신기한 것은 그런 차이에 입각한 전략들이 실제적으로 성공하는 사례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친구들은 말보다 몸을 통해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말에 담기는 신호보다 몸에 담기는 신호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상담실에서 말을 주고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필드에서 함께 움직이면서 표현되는 정동의 양상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정동이 언어에 담기는 양상도 다른데, 가령 운동선수들에게서 '무기력'이라는 개념은 종종 '기량'이라는 개념과의 연관 하에서 작동한다고 한다. (교수님께서 기량과 관련해 선수들이 자주 쓰는 용어 중 '슬럼프' 외에도 이러저러한 용어가 있다고 하셨는데 다 잊어버려서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나라면 평소에 쓰지 않을 굉장히 다양한 표현양식들이 있는 듯 했다)

 

가령 일반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갖고 '우울'에 대한 감정을 다루려고 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부는 잘 되나요? 일은 잘 되나요? 엄마 아빠와 사이 좋게 지내나요? 친구와 싸웠나요? 같은 말보다는 차라리 요즘 기량이 잘 나오나요? 같은 질문이 더 적절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기량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독특한데, 다른 분야에서는 잘 포착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아의 실현이랄지, 개인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것들과 공통점을 지니지만, 그렇다고 학자들이 느낄 '지력'이랄지 회사원들이 느낄 '성과'같은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결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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