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가 하는 일이 통역사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다만 차이는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비언어적인 것을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서비스의 주 대상은 아이를 둔 부모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의도하는 바 혹은 원하는 바는 절대로 '그대로' 언어적으로 표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좋은 것을 싫은 것으로, 혹은 그 반대로 표현하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겨냥하지 못한 채 (혹은 않은 채) 계속해서 변죽을 울리기도 한다. 공격성과 분노, 슬픔과 울음 같은 것들이 뜬금 없는 맥락 속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이 모든 신호들의 범람 속에서 그것들을 가능한한 성인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해주는 것. 나의 일은 그런 곳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Verleugnung]의 글 > 철학적 단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러티브를 읽는 능력 (0) | 2021.10.06 |
---|---|
운동선수와 언어 (0) | 2021.07.22 |
흥미로운 사례들 (0) | 2021.07.22 |
자유와 물리적 제약 (0) | 2021.07.22 |
오늘의 발견 : 내용의 결여가 반복되기도 한다. 게다가 감정의 신체적 표현을 통해서 말이다. (0) | 2021.07.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