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자유로워지길 원한다. 자유의 기본은 신체의 자유이다. 그러나 반대로 신체라는 조건이 그 자체로 자유를 제약하기도 한다.
이유를 모른 채 일생동안 사회생활에서의 억압을 경험해왔던 아이들은 훗날에야 자신이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과 관련해 물리적 제약을 경험해왔다거나 (ADHD), 2,7,16,17번 염색체가 남들과 좀 달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폐 스펙트럼). 동일한 제약들은 사랑하는 능력이라는 기본적인 자유마저도 제한한다.
비슷한 예는 이외에도 수두룩하게 많다. 대상회에서의 제약(강박증)은 자유롭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고, 해마에서의 제약은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자유를 제약한다. 환청과 망상으로 대표되는 정신증의 신체적 배경이 소통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 사람들이 올림픽 정신을 이야기할 때 노력을 이야기하는데, 이것도 어찌보면 자유를 증대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단 여기서도 그 자유는 제한으로부터의 자유라는 특징을 갖는다. 멀리 뛰기, 장대높이 뛰기 선수는 9.8m/s^2이라는 물리적 제약과 투쟁하여 자유를 쟁취한다. 축구 선수는 손이라는 도구의 제약을, 수영선수는 지면과의 마찰력이 부재한다는 제약적 조건 속에서 가능한 한 최대의 자유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한다. 그것이 올림픽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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