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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들뢰즈의 마조히즘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5. 29.

나는 <Présentation de Sacher-Masoch>를 갖고 석사논문을 썼다. 당시 일종의 들뢰즈 빠돌이였기 때문에, 당연히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해서 썼던 것 같다.

 

근데 지금 와서 다시보면, 그는 그 책을 통해 기를 쓰고 정신분석학을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어떤 면에서 지극히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 매여 있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아직은 좀 정신분석학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같다고 해야 하나.

 

들뢰즈는 프로이트가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분석한 방식을 비판하면서, 결국 그가 지독히도 아버지-어머니-아들의 삼각형 구도에 매여 있다고 말한다. 남성 마조히스트는 여성에게 자신을 때려달라고 하는데, 정신분석학은 이 '때리는 여성'을 '아버지의 치환된 모습'으로 간주하면서 과도한 해석적 무리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때리는 사람을 아버지의 다른 얼굴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의 어머니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조히스트가 처벌을 바라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 싶은 것이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로부터의 처벌을 통해 아버지를 능욕하고 희롱하고자 한다는 것.

 

여기서 들뢰즈는 자신이 진정으로 마조히즘의 이론적 구도를 '탈성화(desexualize)'했다고 믿는다. 마조히스트는 처벌을 통해 아버지-어머니-아들의 오이디푸스적 운명을 '탈출'하기 때문이다. 그는 온전히 새로운, Sex의 맥락을 벗어난 새로운 인류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들뢰즈의 이런 구도가 Mania(조증)를 바라보던 과거의 수많은 분석가들의 틀을 닮아있다고 느낀다. 가령 Karl Abraham은 이 조증을 '폭압적인 초자아로부터의 탈출'로 보았다. 초자아가 혹독한 사람들은 우울하기 마련인데, 이런 우울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런 초자아를 무시하고 희롱하면서 자기 자신을 거대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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