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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별 걸 다 리뷰

짐 캐리에 대한 단상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5. 20.

짐 캐리가 출연한 일련의 영화들을 '거짓 자기(false self) 연작'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융 식으로 말하면 페르소나 연작이라고 할 수도.

 

<라이어 라이어>가 '거짓'이라는 요소 그 자체를, 즉 거짓으로 점철된 삶의 방식을 다루었다면 <마스크>, <미, 마이셀프 엔 아이린>에서는 소심한 거짓 자기(입키스 / 소심한 행크)가 힘있고 쾌락을 즐길 줄 아는 참 자기(초록색 괴물 혹은 로키 / 괴팍한 행크)의 모습을 발견하는 노정이 펼쳐진다.

 

<예스맨>은 정확히 동일한 서사를 반대의 경로(거짓 자기를 추구하는 방향으로)로 구성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루먼 쇼>라는 것도 거짓된 세계에 맞추어 진짜 자기가 아닌 연출된 자기를 살아야만 했던 이야기가 아닌가.

 

이처럼 짐 캐리가 구사하는 코미디는 모든 것이 '마스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러다보니 참과 거짓 사이의 경계 문제가 불거지곤 한다. 짐이 앤디 카우프먼의 삶을 잘 담아낼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카우프먼의 삶이야말로 참과 거짓 사이의 줄타기 곡예가 아니었겠나.

 

그런데 이런 경계의 침범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어떤 것이 참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구별 불가능한 지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경계 침범의 문제는 실제 짐의 삶 자체에서도 나타나는데, 다큐 <짐과 앤디>는 이것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짐의 삶 자체가 마스크로 구성되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경제적으로 몰락한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언제나 익살스러운 표정을 구사해야만 했던 그.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그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 마스크가 나인가 아니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 진짜 나인가.

 

영화 속 삶과 실제 삶이 맞물려 돌아가며 결국 그는 어떤 깨달음에 도달한다. 참과 거짓의 구별, 모사와 원본의 구별이 무의미해지는 어떤 순간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모든 곳에 마스크가 있을 뿐이며, 우리가 아무리 마스크를 벗기고 봐도 그 뒤에서 오로지 또다른 마스크를 발견할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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