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 사람의 절규에는 어딘가 공통적인 데가 있다. 마틴 스콜세지 표 절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표정을 처음 본 것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였다. 예수는 마지막 순간 세속화된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울부짖는데 그 울부짖음이 나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줬던 것 같다.
- <사일런스> 속의 앤드루 가필드(세바스티앙 역)에게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풍긴다. 그걸 고통이라고 해야 하나 고뇌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뭔가 상당히 고통스러우면서도 내 안의 성스러움을 느껴지게 하는, 어떤 숭고와 같은 것이 돋아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 두 영화 모두 어떤 기독교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니 당연히 비슷한 경험이 느껴지지 않겠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문제는 전혀 기독교와 상관 없는 작품에서도 비슷한 것이 경험된다는 것이다. <디파티드>가 대표적인 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했던 빌리는 어떤 면에서 얼굴만 다른 예수와 세바스티앙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 세 사람에게서는 언제나 정체성의 변형이라는 문제가 출현한다. 변형이라 함은 가면을 바꿔쓴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변형의 문제는 항상 어떤 유혹의 구조를 경유해 발생한다. 가령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마지막 순간 악마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너 이렇게 십자기에 매달린다고 너희 아버지가 좋아하시지 않아. 너희 아버지는 네가 자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길 바란단다..." 예수는 구원자 그리스도의 가면을 내려놓고 요셉의 아들 예수의 가면을 집어드는데, 그렇게 세속화된 정체성으로의 변형이 진행된다.
- 비슷한 유혹의 구조는 <사일런스>에서도 반복된다. 리암 니슨(페레이라 역)과 아담 드라이버 (가르페 역)는 종교적 신념의 두 축을 담당하는데, 가르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신의 종교적 외양을 유지하고자 한다. 반면 리암 니슨은 그런 것이 그저 외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모든 종교는 같으며, 따라서 우리는 굳이 목숨을 버려가면서 종교적 신념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면서 말이다. 그 누구보다 독실했던 세바스티앙은 환복을 조건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한다.
- <디파티드>에서는 중심 주제가 종교에서 사법의 영역으로 변경되지만, 비슷한 구조는 유지된다. 빌리는 마틴 쉰(올리버 퀴넌 경감 역)의 권고(혹은 유혹)에 따라 범죄자의 가면을 쓴다. 최고의 선을 구현하기 위해 최악의 장소로 숨어들어가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그는 오로지 범죄자가 됨으로써만 범죄자를 소탕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
- 그런데 이 세 작품에서 이런 정체성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 일관되게 유지되는 어떤 것. 그것을 신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외양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어떤 한 가지. 우리를 우리 자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알맹이 같은 것. 숭고의 감정은 바로 그런 곳에서 나온다.
- <디파티드>가 그것의 원작인 <무간도>와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느낌을 풍기는 데도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무간도>가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긴장과 서스펜스에 집중했다면, <디파티드>는 그런 활극 속에서 한 인물, 특히 빌리가 느끼는 불안과 혼동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혼동 속에서 어떤 알맹이같은 것이 더 강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는 그 알맹이가 전해지는 느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 이들의 절규가 절망적이긴 해도, 우리의 착한 스콜세지 감독님은 절대로 완전한 절망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영화는 항상 알맹이의 완성을 향해간다. <디파티드>에서, 비록 빌리는 죽지만, 범죄자들은 응당한 죗값을 받는다. <사일런스>는 화염 속에 타들어가는 환속자 세바스티앙의 말로를 보여주면서도 그가 주먹 속에 꼭 붙들고 있던 십자가의 형상을 보여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 <그리스도...>에서 이것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시험의 극단 속에서 완전한 정체성의 와해를 경험한 예수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다시 십자가에 매달리게 해주세요! 다시 당신의 아들이 될 수 있게 해주세요! 그 순간 모든 사건들이 소급적으로 역주행하면서 십자가 위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이 비친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십자가 위의 예수는 웃으며 말한다. "It is accomplished... it is accomplished...!"라고 말이다.
- 이 모든 계기들 속에서, 그 엄청난 절규와 와해 속에서 절대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어떤 것이 남는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숭고를 경험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숭고함이 이 세 영화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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