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s 페라리>가 진부한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

<포드 vs 페라리>는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인 대결구도를 암시하는 면이 있다. 포스터 속에서는 이제는 대배우라고 간주해도 좋을 맷 데이먼과 크리스천 베일의 두 얼굴이 서로 대립하면서 마찬가지로 모종의 대결이 암시되고 있다.

이런 종류의 헐리우드 식 전기 영화가 대개 그렇듯,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대결 혹은 대립의 구도는 어떤 성장기적인 교훈의 측면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인물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마치 헤겔 식의 지양이 일어나듯 새로운 제 3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포드 vs 페라리> 속에서 충돌하는 가치들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고전적이다. 탄탄한 기본기와 실력, 원칙주의가 성공한다는 가치관과 쇼맨쉽, 마케팅, 계략이 성공한다는 가치관이 서로 대립하면서 투쟁한다. 영화는 상당히 솔직한 편인데, 전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어찌보면 다소 진부한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그런데 <포드 vs 페라리>에서는 이상하게도 진부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대립을 구성하는 방식이 상당히 특이하기 때문이다. 우선 예상과 달리 주요 대립 구도가 포드와 페라리 사 사이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주요 갈등이 포드 사 내의 직원들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런 가치의 충돌은 삼중으로 맞물려 나타나는 복잡한 형태를 띤다. 즉 포드 사의 운영 방침 및 지향점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표면적 대립'이 인격적인 가치관 사이의 '심층적 대립'과 맞물려 나타난다.

포드 사와 페라리 사는 누가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드냐를 두고 경쟁을 펼친다. 포드 사에서 개발 책임을 맡은 셸비는 튼튼한 엔진과 실력있는 레이서만이 승리를 가져다 준다고 확신한다. 셸비는 마일스(크리스천 베일)를 레이서로 추천하는데, 셸비와 경쟁관계에 있는 책임자 비비(조쉬 루카스)는 괴팍한 성격의 마일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셸비라 신임을 얻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던 터라, 그는 사장에게 더 잘생기고, 말도 잘하는 다른 레이서를 내보내자고 설득한다. 마일스는 상품성과 홍보 효과가 떨어진다면서 말이다. 

진부한 플롯이라면 이 두 사람의 대립 사이에서 어떤 성장과 변화가 일어나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면서 어떤 훈훈한 화해 같은 것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포드 vs 페라리>에서 성장의 궤적은 전혀 엉뚱한 경로를 통해 나타난다. 말하자면 성장기적 요소와 좀 더 관련되는 인격적 가치의 충돌은 셸비와 마일스 (크리스천 베일) 사이에서 나타난다. 셸비는 마일스 (크리스천 베일) 가 대단히 훌륭한 레이서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의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운데다가 다소 사회성 떨어지는 성격을 못마땅해한다. "실력이 좋으면 뭐해? 스폰서가 없으면, 차도 없는 거야!"

그렇지만 셸비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일스를 설득한다. 결국 마일스는 이런 셸비의 눈물겨운 노력에 힘입어 대망의 레이스 '르망 24'의 레이서 자격을 따 낸다. 포드 사를 대표해서 말이다. 셸비는 제발 다 된 밥에 재를 뿌리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오만한 데다 이기적인 마일스는 계속해서 충돌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충돌들 속에서, 마일스에게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영화 말미 대망의 레이스 장면에서, 선전하고 있는 마일스가 못마땅했던 비비가 포드 사장에게 다가와 말한다. "한 명이 혼자 일등으로 들어오는 것보단 1,2,3등으로 동시에 포드 세대가 들어오는 게 더 멋지지 않겠어요?" 셸비는 이에 질 세라 마일스를 향해 외친다. 너의 실력을 최대한 보여주어 비비 녀석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라고. 

마일스는 최고 속도를 경신하며 결승점을 향한다. 그러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불현듯 무언가를 느낀 마일스는 갑자기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다. 다른 두 대의 자동차와 함께 결승전에 들어오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렇게 마일스의 내부에서 개인보다 팀이 우선한다는 어떤 가치의 전환이 발생한다. 셸비와 비비 사이의 팽팽한 외적 가치의 대립이 내적 가치의 대립에 자리를 내어주면서, 어떤 가치의 지양이 일어나는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진부한 경쟁 구도와 성장기적 요소는 그렇게 한 단계 우회된 삼중의 대립 구도를 통해 통합되기에 이른다. <포드 vs 페라리>의 세련된 기교는 바로 그런 지점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