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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별 걸 다 리뷰

영화 <결혼 이야기>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0. 12. 12.


결혼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왜 사는가', '뭘 하고 살아야 하는가' 다음으로 사람을 고뇌하게 만드는 질문은 아닐지 모르겠다. 조사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을 20위부터 따졌을 때 1위는 배우자의 사망, 2위는 이혼, 3위는 별거, 7위는 결혼이란다. 그 중간  4위 어디쯤에는 '교도소에 수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혼 이야기>는 그런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봤던 아내는 이게 이혼 이야기지 무슨 결혼 이야기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영화는 줄곧 이혼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텍스트는 정확히 이혼이라는 목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즉 영화는 '결혼'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차라리 이혼에 다다르는 디테일한 과정을, 그 소송의 과정을 늘어놓는 가운데 관객이 그 이면의 어떤 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 어떤 면에서는 퍽 카프카스러운 데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영화에는 지독히도 롱테이크가 많다. 일설에 따르면 영화의 그 유명한 부부싸움 장면을 약 50번 정도 찍었다고 한다. 상당한 감정적 소모가 있었고, 배우들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관객 입장에서도 좀 고단한 데가 있었던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꼭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난 느낌이 들었다.

쇼트의 호흡이 길다는 것은 구두점이 없다는 것과 같다. 책이든 사람의 말이든 마침표나 구두점이 있어야 그 흐름을 끊고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분위기 전환이라도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구두점이 없으면 우리는 계속 그 흐름을 좇아가야 하는 어떤 강제성의 영역에 놓인다. <결혼 이야기>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배우들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자신의 감정을 끌고 올라가는 그 능선을 관객들이 그대로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 강요는 불쾌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쾌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어떤 것이다.

영화는 결혼이 사실은 미움과 증오의 감정으로 똘똘 뭉쳐진 현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폭로하는 대신, 배우들과 관객들이 이러한 폭로에 점진적으로 노출되도록 강제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씩 풀어헤치는 과정 진행시키면서 마지막에는 결혼이라는 삶의 순간 뒤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가 직면하고 싶지 않지만 언제나 끌어안고 살아갔던 증오와 미움이라는 괴물을 마주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괴물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낼 때, 여주인공은 남편이 얼마나 망나니 같은 사람인지, 자신이 결혼으로 인해 얼마나 망가진 인생을 살았는지 열변하고, 남자는 자신이 포기해야 했던 젊은 시절들을 언급하며 종국에 여주인공이 "차에 치여 죽어버렸으며 좋겠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렇게 괴물을 마주하는 것이 꼭 그렇게 불쾌하지만은 않다. 분명히 어떤 불편한 것에 대한 직면이 일어났는데, 거북스러운 데가 별로 없다. 그런 것이 이 영화의 기교라면 기교일 것이다. 고름이 터지는 대신 천천히 흘러나오게 만들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직면을 피하지 않게 하면서도 그 직면의 홍수 속에 빠져 헤엄치지 않게 하는 그런 기교 말이다.

이는 안전한 치료 공간에서 외상을 점진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환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결혼 이야기>를 본다는 하나의 '경험'은 우리가 언젠가는 직면해야 하는 것들을 그렇게 천천히 직면하게 해주는 하나의 치료적 경험이 아닐까. 결혼 전 혹은 초기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혹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강제적으로, 그러나 점진적으로 직면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러한 경험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을 언급해본다. 영화 말미 이혼이 거의 확실시 됐을 때, 아담 드라이버가 바에서 직장동료들과 술자리를 갖던 도중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70년에 초연했던 '컴퍼니'라는 뮤지컬의 주제가다. 노래는 사랑이 때로는 ’상처를 주고‘, ’자리를 빼앗고‘, ’단잠을 방해‘하며 심지어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기도 한다고 담담하게 말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그것이 ’살아 있다는 것(being alive)’이 아니냐고 항변한다. 아담 드라이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특유의 표정으로, 회한과 단념, 수용의 눈빛을 띤채 힘을 주어 노래를 부른다. 그 복잡 미묘한 두께가 나를 꽤나 오랫동안 이 장면에 묶여버리게 만든다.

 

www.youtube.com/watch?v=TW8IaLXvO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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