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에 새로운 배트맨 영화가 나온단다. 이번 예고편을 보면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배트맨이 악당 조무래기들을 '잔혹하게 줘패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거기에는 분명 '통제를 잃고 폭력을 휘두르는' 개인의 초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정신줄 약간 놓은 듯한' 폭력성은 분명 '조커'에서 나타나는 그것과 상당부분 유사한 면을 보이고 있다. 시대적인 분위기인지, 현재 DC 쪽 컨셉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이렇게 '화가 나다 못해 정신 줄 살짝 놓은' 개인의 초상을 묘사하는 것이 유행이 된 것 같다.
# 1989년, 팀버튼은 이런 브루스 웨인의 '어두운' 측면을 효과적으로 묘사해 찬사를 받았다. 팀버튼의 배트맨은 일종의 '신경증자'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그는 오이디푸스적 갈등의 최정점에서, 엄격한 초자아를 바탕으로 죄의식에 시달리는 햄릿 형의 영웅을 보여주고 있다. <배트맨 비긴즈>를 감독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와는 조금 달리 '자기애성 인격'을 가진 브루스 웨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웨인은 상실을 겪고 나서 그러한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신체를 단련하고, 몸집을 부풀리면서, 더 거대한 존재가 되고자 열망하는 개인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배트맨 비긴즈> 같은 영화는 '짓눌려 열등감에 쌓인 소년이 자기 과시적인 행태를 보이는 스토리'라고 요약될 수 있다.
# 이번에 나타나는 새로운 '배트맨'은 이렇게 상실을 겪은 취약한 개인의 모습이 조금 더 진행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브루스 웨인의 자기(self)는 '짓눌리고 짓눌리다 못해 열폭에 시달려 흥분에 날뛰는' 소년처럼 나타나고 있다. 은 이처럼 자기가 파편화된 개인들에게서 공격성과 반사회성이 종종 나타난다는 것을 누누이 보고하고 있다. 취약한 자기를 가진 이들의 반사회적 행동은 ‘자신이 전능하며 행동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며 공허감과 자존감 결핍에 대한 방어’라고 볼 수 있다(Kohut, 1971).
# 그런데 이런 캐릭터에 웬지 로버트 패틴슨이 썩 잘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든다. 이 남자는 그저 '여성팬들이 환장하는' 배우라고만 생각했지 관심을 두지 않다가, <라이트 하우스>를 보고 나서 좀 생각이 바뀌었다. <트와일라잇>류의 영화가 기생오라비 같은 그의 마스크를 이용했다면, <라이트 하우스>는 그 기생오라비같은 얼굴 뒤의, 숨겨진 공격성을 이용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종종 여리고 야들야들해보이는 마스크를 가진 녀석들이, 사실 그 가면 뒤에 상당한 공격성과 증오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하지 않는가. 이번 <더 배트맨>은 아마도 그의 마스크를 조금 더 밀고 나가, 그 마스크에 숨겨진 분열 자체를, 즉 기생오라비 부잣집 도련님의 마스크와 그 이면에 꾹꾹 눌러담겨진 가공할 공격성과 분노를 다루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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