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 머리 속이 복잡했다. 이것도 나름 직장(?)생활이라고, 스트레스 받을 것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단순한 세계'라는 막연한 이상향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조용한 농촌 밭으로 나가 자연을 바라보며 복잡하게 뒤엉킨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필자는 최근 초등학교에 건강검진 출장을 나가게 됐다. 원래 출장 나가는 걸 굉장히 귀찮아하는 편이지만, 왠일인지 이번엔 뭔가 기대가 됐다. 초등학교. 성인들이 배제된 어린이들의 세계. 그곳에는 아직 소위 '복잡함'이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터였다. 어린이들의 세계에는, 아직 차가운 문명의 굴레가 덮어씌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복잡다단한 성인들의 세계에 지친 나는, 순수한 어린이들의 세계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환상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크나 큰 착각이었다...
초…초딩이다!!! |
그곳에서 나는 인간의 세계가 취할 수 있는 복잡성의 극한을 보았다. 이보다 더 복잡할 수 는 없었다. 직장 생활에서의 스트레스와는 그 지층 자체가 달라 비교가 불가능했다. 이것은 나라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차원이 아니었다. 처음 교실 안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 자동적으로 나의 눈길은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에게로 향했다. 과연 이런 상황을 매일 받아들이고 있는 그 혹은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물론 어린이들을 사랑한다면 직업으로서의 보람이 매우 클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날, 해당 교사의 눈 밑에서 짜증 섞인 눈둘레근의 수축양상을 보게 됐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초등교사. 그것은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다. |
카오스. 그 세계는 철저한 카오스에 내맡겨져 있었다. 몇 번을 책을 보아도 마음에 와 닿지 않던 그 '혼돈'이라는 개념이, 순간 직관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혼돈'인 것이다! 어린이들의 세계가 성인의 세계와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었을까. 필자는 갑자기 초등 교사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종잡을 수 없는 이 어린이 '분자'들을 하나의 방 안에, 그리고 각자의 좌석에 가만히 앉혀놓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불가능 한 것으로 보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지금 물 속에 퍼진 잉크를 한 점으로 모으고 있는 것이다. 교실이 물이라면, 아이들은 잉크 분자다. 잉크가 물 속에 퍼지는 반응이 자발적이라면, 잉크가 다시 모이는 것은 비자발적이다. 그렇기에 잉크 분자들을 다시 하나의 점으로 다시 모으기 위해서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것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열역학 제 2법칙'이다. 1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선생님의 조정행위가 없다면 절대로 정돈되지 못하는 걸까? 전적으로 선생님의 의지의 크기, 또는 '에너지의 크기'에 의해서만 이 아이들은 질서를 갖추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따진다면 초등학교 교사라는 사람은 정말이지 대단한 힘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도 질서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자연 생태계는 인간의 의지가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아도 나름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하물며 야생의 동물들도 그러할진대, 아직 미숙하긴 하지만, 소위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는 이 어린이들이, 스스로 균형상태를 만들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어린이들의 거동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대뜸 박테리아의 거동을 떠올리게 됐다. 예전에 어디선가 '세균의 질서 있는 움직임'에 대한 것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분명 세균들은 질서에 대한 의식이나 개념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그러한 '의지'가 없이도, 그들은 인간이 보기에 '질서 있는' 행동을 나타냈던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 순수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세균을 떠올린 필자를 질타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질서 개념'에 있어서 만큼은 어린이가 세균보다 결코 탁월하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은가? 필자의 논지는 이렇다. 만약 세균에게 질서를 형성하는 능력이 있다면, 이 혼돈스러운 어린이들도, 어른들의 강압 없이 스스로 자발적인 질서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테리아의 질서 창발
박테리아는 과연 '지능'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단지 주변의 영양분을 섭취한 뒤, 필요한 활동을 하고, 배설물을 배출할 뿐이다. 쉽게 말해, 단순하게 먹고 싸고 움직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박테리아에게서 일종의 '복잡한' 활동 양상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그들은, 그들의 생활사가 단순한 만큼, 그들의 거동에 있어서도 지극히 단순한 모습만을 보일 것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본 츄오 대학교의 물리학자 마츠시다 미츠구의 의견에 따르면, 박테리아들도 '충분히 복잡한 행동을 보일 수 있다!'. 비평형 통계물리학을 전공한 마츠시다 교수는 바실루스 수브틸리스(Bacillus subtilis)의 거동을 보면서, 이 단순한 세균들에게서도 충분히 복잡하고 질서 있는 패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
벤-야콥의 박테리아 패턴들. 그리고 문양제작의 장본인, 세균 |
이 정교한 세균 군체의 모양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균들이 만들어 낸 이 다양한 문양들을 보면서, 필자는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보았던 자개장 무늬를 떠올리기까지 한 것이다! 과연 이 세균들의 무늬가 자개장 무늬에 비해 뒤떨어지는 면이 있기는 한 건가? 허무하도다. 아름다운 자개 무늬를 토해내기까지, 장인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만 했던가. 그런데 이게 뭔가. 한낱 미물인 세균덩어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무늬를 창조해내다니.
나전칠기 문양, 그리고 무형문화재 손대현 명장 |
장인이 위의 무늬를 제조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원인들이 필요하다. 일단 그의 미적인 감각이 요구된다. (물론 자개장 무늬에서 그 어떠한 아름다음도 발견할 수 없는 자는 여기에 동조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머릿속에 특정 문양을 구상해 내는 구상력이 요구된다. 또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장인은 전체 작업과정 및 전체적인 작품의 이미지를 '이미'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야만 한다. 즉, 철저히 계획적으로 모든 것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그러한 구상을 새겨내기 위한 손놀림이 필요하고, 그 손놀림이 적절히 발현되기 위한 근육의 힘과 배치 또한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번엔 세균의 입장으로 돌아가보자. 언뜻 생각하기에 저런 무늬를 만들 수 있기 위해서는 세균들로서도 위와 같은 '능력'들을 필요로 해야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내가 검진을 나갔던 초등학생들도 다 안다. 세균들은 장인처럼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이 그리게 되는 무늬에 대한 정보를 '미리' 갖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그것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지 자신의 앞뒤 혹은 옆에 있는 세균 친구들로부터 특정한 자극을 받고, 그에 대해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자극 반응 혹은 상호작용은 지극히 국소적이고, 미시적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국소적인 상호작용이 결국엔 거시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시스템을 우리는 복잡계(Complex system)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복잡계란 무엇일까. 이번 글에서는 지면상 복잡계의 특성이 무엇인지만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복잡계의 특성
복잡계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특징을 가진다. 3 첫째, 복잡계는 상호작용 하는 많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세균 군체에 속한 개개의 세균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복잡계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은 흔히 비선형적(nonlinear)이다. 상호작용의 비선형성은 혼돈과 관계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다. 극히 작은 요동도 구성요소들 사이를 전파해나가면서 증폭되어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복잡계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은 흔히 되먹임 고리(feedback loop)를 형성한다. 상호작용하고 있는 각각의 세균을 생각하면 된다. 각각의 세균 개체들은 주변의 세균들에게 국소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그 주변 세균들은 이러한 자극에 대해 특정한 단순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 반응을 통해 원래의 세균은 다시금 피드백을 받게 된다. 넷째, 복잡계는 열린 시스템이며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시스템이 열려 있다는 이야기는 외부환경과 차단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다섯째, 복잡계의 구성요소는 또 다른 복잡계이며 종종 끊임없이 적응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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