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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별 걸 다 리뷰

[별 걸 다 리뷰] 영화리뷰 - 멜랑콜리아 2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13. 6. 28.

 

 

 

3. 멜랑콜리아에 대한 양가적 감정

우리는 거대한 자연물을 접할 때 경외와 공포의 이중적 감상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감상은 일종의 숭고함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숭고함에 대한 정의는 사실 굉장히 복잡한 개념적 이해를 필요로 하지만, 필자는 그만큼 깊은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하므로 여기서는 그저 단순하고 피상적인 의미에서의 숭고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처럼 (피상적인 의미에서의) 숭고한 대상을 마주할 때 인간 군상은 양가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 같은데, 이러한 태도는 행성 멜랑콜리아를 대하는 극중 인물들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클레어는 행성의 파괴적인 측면에 집중하여 비교적 종말론적인 입장을 취함에 반해 남편 존은 그것이 갖고 있는 장엄함 혹은 아름다움 같은 것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걱정 많은 소심한 엄마의 이미지. 행성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클레어는 눈물 콧물을 가리지 못한다.

 

 

 

 

 

존은 생각이 없는 건지 멍청한 건지 행성이 다가올수록 어린애처럼 좋아하기만 하면서 어딘가 모자란 듯한 모습을 보이는 데 이처럼 성인 수준의 지능이 결여됨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화 내내 아내 클레어보다도 아들과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양상을 보인다.

 

멜랑콜리아에 대한 감정 변화는 한 개인 내부에서도 극 중 시간 변화에 따라 변화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극 중 초반 클레어는 멜랑콜리아의 접근에 대해 굉장한 공포를 느끼다가 이내 그의 남편과 아들이 만들어온 지극히 정밀하고도 과학적인 측량 기계를 통해 행성이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음의 위안을 찾는다. 그녀는 존의 권유에 따라 테라스에서 와인 파티를 즐기기에 이르지만 곧 존의 말이 비과학적 구라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오열하기 시작한다.

 

 

 

 

 잘 놀던 그녀는...

 

 

 

존에게 속았다는 걸 알고 또다시 오열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시간에 대한 클레어의 감정 기복을 그래프로 간단히 도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잠깐, 이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그래프다. 그래 이것은 양극성 환자의 감정곡선의 그것이 아니던가?

 

 

 

 

 

또 이처럼 인간 군중의 감정이 춤추듯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일종의 ‘경로’를 형성하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영화 중반에 출연하는 이 행성의 ‘경로’에 대한 지도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원운동은 단진동 형태로 그래프에 도시할 수 있는데, 필자는 같은 방법으로 행성의 운동 진폭과 주기를 그려보았다.

 

 

 

 

 

 

 

 

 

이처럼 우리는 행성과 감정의 경로의 양상이 매우 유사한 것을 보면서 그들의 행성에 대한 태도는 행성이 궤적을 변경할 때마다 마치 함수의 x와 y값의 관계처럼 일정한 영향을 받아 종속변수로서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두 그래프 양상의 동기화정도로 보건대 종속성의 강도가 강하며 그만큼 행성의 위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처럼 행성이 ‘다가옴’으로써 인간의 정신이 감응한다는 구도는 마치 조선시대 신내림을 받은 무당의 감응구도와 비교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얼마나 세계 보편적인 도식이란 말인가? 이러한 도식은 외부의 의지가 인간 세계 내로 ‘방문’ 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이 영향을 받는다는 차원을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는 다시 한번 고전적 의미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 대사 한마디 없고 구체적인 행동 하나 없는 커다란 돌덩어리를 보면서 영화 내내 312141자 정도의 대사를 읊조리는 이 무수한 등장인물들보다 더 큰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의 질량만큼이나.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진정 질량이 큰 물체는 공간을 크게 휘게 만드는 걸까.

 

‘선샤인’에서의 태양도 비교적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나는 멜랑콜리아에게 한 표를 주고 싶다. 태양은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않는가? 용암 같은 불기둥과 뜨거운 열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에게 물리적 고통을 가하지 않느냔 말이다. 이런 종류의 물리적 위해는 과학기술에 의해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다는 상상을 우리는 한다. (현대적 관점에서 봤을 때)

 

 

 

 


그러나 멜랑콜리아처럼 정신의 감응을 좌지우지하는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무기력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그래, 나는 영화 역사상 이보다 더 강력하며, 공포스럽고, 위대하며 숭고한 대상이 없지 않느냐! 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게다가 행성이 움직이는 배경에 흐르는 음악이란 게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니. 음악 역사상 바그너보다 더 숭고미를 추구했던 자가 있단 말인가?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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