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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별 걸 다 리뷰

[별 걸 다 리뷰] - 버거킹 와일드 웨스트 와퍼 (2011.04.17)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13. 6. 27.

 

 

 


필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본인은 사실 본태적으로 맥도날드 추종자다 맥도날드 버거만이 가지고 있는 그 특유의 싸구려 패티 맛. 그래서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본인은 맥도날드 이외의 다른 버거집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맥도날드의 존재 유무가 곧 해당 시가지의 세계화 정도를 나타내는 이 시대에 아직까지도 굳건히 반세계화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회기동의 주민으로서 본인은 버거킹의 소비자로 노선을 갈아타도록, 더 나아가 취향의 전도를 강요받게 되었고 소위 강요된 선택에 의해 버거킹의 수요자로 전향한 본인은 (비록 관계의 출발이 강요에 기인한 것이긴 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버거킹의 버거만이 갖는 오묘한 신비를 느끼게 되었다.

 

강현우씨의 말에 따르자면, 버거킹의 패티에는 그릴의 향이 묻어있다고 한다. 숯불의 향. 마치 방금 막 숯불 그릴에 구워낸 듯한 향. 한 때 강현우씨와 그 숯불향의 기원이 어디인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벌였던 적이 있다. 여러가지 가설이 제기되었으나, 몇몇 가설은 그 설명의 비개연성에 의해 , 그리고 또 몇몇은 그 설명의 복잡성 때문에 폐기되었다. 우리는 소위 '오컴의 면도날'에 따라 최대한 간단하고 팬시한 설명방식을 찾아야만 했고 결국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ㅡ 버거킹의 패티에는 숯불향 소스가 발라져 있다 ㅡ

 

인간과 인간 사이 애정이 싹트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접근성이라고 했던가? 햄버거 가게와 나 사이의 관계도 어쩌면 동일한 함수의 연산작용에 기인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이젠 버거킹도 나에게 있어 맥도날드가 가진 만큼의, 아니 그보다는 약간 작지만 그래도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매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본인은 본래 이주일에 한번씩 맥도날드에 대해 행해지던 핫지(Haji ; 무슬림이 지켜야 할 5가지 의무 중 하나로, 메카를 비롯하여 이슬람의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적 관습을 버거킹으로 전도시켜 유지하게 되었고, 곧 버거킹에 대한 충실한 고객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게 되었다.

 

잡설은 그만두고,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며칠전부터 티비에서 유세윤씨가 와일드 웨스트 와퍼라는 걸 선전하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어 보일 수 가 없었다는거다. 와일드라는 단어에 담겨있는 거친 육질의 느낌, 그리고 지저분하게 햄버거의 바깥으로 뚝뚝 떨어지는 케첩의 이미지 ㅡ 그런 것들이 모여 나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게다가 웨스트라니! 그것보다 햄버거라는 존재의 오리지널리티를 더 잘 표현할 수 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며칠전부터 작심을 하고 있던 본인은 오늘 저녁 큰 마음을 먹고 버거킹으로의 순례를 감행, 육천팔백원을 지불하고 와퍼세트를 모셔오게 되었다.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와일드 웨스트 와퍼

 

그러나 아아! 실로 이름이라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대상의 본질으로부터 미끄러질 수 밖에 없는 것을. 맛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불협. 그 안에서 나는 와일드한 육질의 맛도 느낄 수 있었고 뚝뚝 떨어지는 케첩의 이미지 또한 느낄 수 있었으며 웨스트스러운 육중한 사이즈와 양 또한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도무지 하나의 촛점으로 모아지지가 않았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 <더 플라이>에서 순간 이동장치를 발명한 주인공 세스 박사는 그것의 작동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소고기덩어리를 전송시키는 실험을 한다. 소고기의 모든 원소가 분해되고 그것이 전선을 타고 이동, 다른쪽의 이동장치에서 재결합되어 나타난다. 소고기 전송은 성공한 것 처럼 보인다. 심지어 기계의 분석에 의하면 이동된 소고기의 원소 구성은 원본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세스는 소고기 원본과 이동된 소고기 모두를 각각 조리하여 여자친구 앞에 대령 시킨다. 그때 후자를 맛본 뒤 여자친구가 하는 말.

 

 

 

 

 

대략 이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분명 햄버거가 갖춰야할 요소를 모두 갖췄지만 그 요소들이 묘하게도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그런 맛. 일단 패티의 맛은 여느 버거킹 버거나 다르지 않았다. 역시나 숯불향 소스의 맛이 났고 육즙이 느껴지는 듯한 맛이 났다. 내가 맛본 바로 이 버거의 재료는 다음과 같다.


1. 잡다한 야채들

2. 빵과 패티, 그외 햄버거에 들어있을 만한 공통적 재료들

3. 할라피뇨

4. 바베큐 소스

 

1번과 2번은 햄버거를 이루는 기본 플랫폼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어떤 것이 추가되느냐에 따라 햄버거의 종류가 달라지며, 위의 버거의 경우 3번과 4번이 그것의 아이덴티티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근데 문제는 3번과 4번이 화음을 이룰 수 있느냐 하는거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라. 바베큐 소스는 소스들 중에서도 특유의 강한 맛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한 소스다. 조연보다는 주연 역할을 하는 소스다. 할라피뇨는 어떠한가? 고추들 중에서도 나름 매운걸로 제값한다는 놈이 아닌가? 우리가 학교 다닐때 경험해 봐서 알지만 특정 집단에 개성 강한놈이 두명 이상 있으면 꼭 문제가 일어난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한명이 주연역할을 하면 으레 한쪽이 죽어줘야 하기 마련인데 둘다 핏대 세우고 싸우다보면 그야말로 풍비박산난다.

 

일반적으로 할라피뇨는 느끼한 음식과 동행할 때 그 빛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또 실제로 할라피뇨를 볼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치즈나 기름을 주로 사용하는 음식점인 경우가 많다. 멕시코 음식점이나 피자가게, 또는 파스타집 등등. 그런데 이런 할라피뇨를 바베큐 소스와 버무린다니. 이게 무슨 부조화란 말인가. 사실 할라피뇨의 매운맛이 너무 강해 바베큐소스의 향을 제대로 느끼기도 어려웠다. 정리하자면, 할라피뇨는 할라피뇨의 역할을 못하고 바베큐 소스 또한 그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윈윈이 아니라 루즈루즈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점은 햄버거와 그것의 사이드메뉴와의 궁합에서도 드러난다. 세트 메뉴를 시키면 꼭 프렌치프라이가 같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프렌치프라이는 햄버거의 단짝으로 고정돼있고 또 실제로 햄버거와 묘하게도 궁합이 잘 맞는다. 내가 생각하기로 프렌치프라이가 햄버거의 단짝으로서 갖는 장점 중 그것의 맛에 의한 측면 이외에 갖는 어떤 기능적인 측면은 다음과 같다.

 

 

 

 

 

1. 햄버거 속의 소스가 너무 많거나 강할 경우 그것을 중화시키는 역할 (감자 자체의 역할)

2. 햄버거 속의 소스가 너무 적거나 약할 경우 케첩을 통해 그것을 보강시키는 과정에 있어서의 훌륭한 매개체로서의 역할

 


어떻게 보면 프렌치프라이는 언제나 환영받는 것 처럼 보인다. 햄버거의 소스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그것의 기능을 수행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프렌치프라이는 그런 완충작용을 잘 소화해내며, 그래서 햄버거의 단짝으로서의 역할을 오래도록 지속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번 햄버거의 경우 1번과 2번 사이에 숨어있는 논리적 약점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위에 말했듯 와일드 웨스트 와퍼에는 할라피뇨가 있기 때문에 그것의 향과 매운 맛이 너무 강해 케첩을 찍지 않은 순수한 프렌치프라이의 중화작용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놈의 햄버거에는 더럽게도 소스가 부족하다는거다!!!!!!!!!!! 소스의 부족함, 다시 말해 패티의 퍽퍽함을 조절하자니 케첩이 필요하고 할라피뇨의 강렬함을 조절하자니 케첩없는 프렌치프라이가 필요하게 되는 정말 눈물나는 시츄에이션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콜라와의 관계도 그렇다. 콜라의 역할은 음식의 느끼함을 보완하는 것으로, 할라피뇨의 역할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혹시 할라피뇨와 콜라만 먹어본 적이 있는가? 안해봤으면 나중에 한번 시도해보라. 할라피뇨는 콜라의 톡쏘는 통각을 강화시키고 콜라는 할라피뇨의 매운맛을 강화시킨다. 도무지 서로 보완을 할 줄 모르는 관계인거다. 실제로 나는 멕시코 음식점 같은 데 가서도 음식을 먹을 때 할라피뇨나 콜라 중 하나만 선택하는 편이다 콜라를 선택한 날은 되도록 음식과 콜라만 먹고 할라피뇨를 선택한 날은 되도록 음식과 할라피뇨만 먹는 편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콜라를 안시키면 되니까. 아니면 콜라보다 약간 약한 음료, 예를 들면 주스라든지 무알콜 마가리타 같은걸 시키면 되니까.

 

그러나 세트메뉴를 선택하는 자에게는 그러한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 세트메뉴를 시키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 그리고 콜라를 화합시킬 수 밖에 없는 당위적 사명을 띄게 되지 않는가! 할라피뇨의 완전한 미스 캐스팅.

 

어떤 멋진배우가 있는데 감독이 영화를 그지같이 만들어서 그 배우까지 그지같이 만들어버리면 팬들 차원에선 가슴아프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할라피뇨를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사건을 통해 쓸데 없이 그것의 비호감적인 측면을 보게 되어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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