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최근에는 헤겔 및 칸트 그리고 맑스의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상태다. 아무래도 철학을 공부하다보니, 독일의 사상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독일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겼다. 올해에 나는 꽤나 많은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이번이 아니면 이런 기회가 또 없겠다 싶어 독일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일단 기본적인 여행의 목적은 '성지순례'다. 독일 사상의 발원지를 찾아, 각 사상가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추가적으로, 그 외 제반 독일의 문화와 풍습을 경험하고 올 것. 특히나 독일의 음식과 맥주 그리고 미술을 경험해 볼 것. 독일 여행의 목적을 차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사상가들의 흔적을 찾아 볼 것
2. 뒤러, 브뢰헬, 보슈, 클림트, 실레의 그림을 감상하고 올 것
3. 독일의 음식과 맥주를 경험해 볼 것
여행 루트를 짤 때는 기본적으로 김덕영 교수의 연재 칼럼 <사상의 고향을 찾아서> (http://www.hani.co.kr/arti/SERIES/446/) 와 독일여행 정보 사이트 (http://reisende.tistory.com/) 그리고 Justgo의 해외여행 가이드북을 참고했다. 여행 중 방문할 장소는 크게 네 군데다. 베를린, 빈(오스트리아), 슈투트가르트, 트리어. 베를린에는 그 유명한 베를린 대학교가 있고, 빈에는 프로이트가 일했던 진료실이 있다. 헤겔은 슈투트가르트에서, 맑스는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다
첫 째날, 에어프랑스를 타고 암스테르담에서 환승을 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 밟아보는 유럽 땅이었다. 암스테르담 공항은 일단 굉장히 깨끗하다. 건물을 새로 지은 건지, 원래 이들이 관리를 잘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나게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베를린의 테겔 공항이 어딘가 지저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갓 외국 땅을 밟게 된 나에게는 모든 풍경이 그저 신선할 뿐이다. 비행기에서 갓 내린 바로 그 상태에서야 말로 여행자는 가장 감각적으로 깨어 있지 않은가?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경험한 몇 가지 신기한 경험을 이 곳에 나열해 본다.
첫 째, 꽃을 싱싱해 보이도록 만드는 방법
상점 사이를 걸어가다가 우연히 꽃집을 발견했다. 그런데 꽃 위에 뭔가 퍼덕거리는 것이 보였다. 잠깐, 설마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하고 다시 한번 쳐다봤다. 꽃 위에서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오!!! 나비가 날아다니는 꽃집이라니!!! 엄청난 감동이 밀려왔다. 너무나도 신기해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내가 거기서 본 것은...
이 촌스러운 동양인이 코쟁이들의 묘한 술수에 넘어가버리고 만 것이다. 꽃을 싱싱해보이게 하려고 별 짓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꽃을 사주고 싶었다.
둘 째, 암스테르담의 마스코트
옆 상점에서 옷이나 모자 혹은 그 외 악세서리들을 팔고 있다. 그리고 그 상품들에는 네덜란드, 혹은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어떤 상징물이 하나씩 그려져 있다. 자, 여기서 문제. 암스테르담을 대표할 만한 상징물을 하나 꼽으라면 무엇을 꼽겠는가? 풍차? 튤립? 혹은 댐을 틀어막는 소년? 모두 아니다. 정답은...
상점의 상품 중 70% 이상에 이 놈의 대마 그림이 박혀 있었다... 여기다 대마 그림을 박아 넣은 이 민족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상징물을 기념품에 그려넣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들에게 있어서는 대마가 자랑스러운 상징물이라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게 자랑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니들은 이거 맘대로 못하지?' 이런 생각인건가? 혹은, '우리는 너희보다 열려 있는 민족이라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인걸까? 대마 합법화에 일정 정도 동조하는 나로서는, 대놓고 대마 그림을 박아넣은 이들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그 와중에 바로 옆 코너로 눈을 옮겼는데, 거기서 이런 조그마한 단지함을 발견하게 됐다. 이건 뭘까. 생긴게 꼭 담뱃잎 넣어놓기 좋게 생겼네. 엇... 설마... 그렇다면... 이건 대마 보관용기???!!! 거기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하니 갑자기 모든 것이 아귀가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건 정말이지 누가 봐도 대마 보관함이다. 나는 얼른 계산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거는 어디에다 쓰는 물건이니?"
"아 그거? 뭐... 그냥 상자야. 귀걸이를 넣어도 되고, 목걸이를 넣어도 되고, 뭐 그런 용도지"
"...으...응..."
셋 째, 계란으로 만든 술
이번엔 옆의 주류 판매점으로 향했다. 분명히 술을 파는 곳인데, 거기에 왠 노란색의 머스타드 같은 것이 들어 있는 병이 놓여 있다. 뭐지 이건? 하고 가까이 가서 살펴봤다.
분명 술이 맞는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앞면에는 달걀이 그려져 있고, 그 안에는 계란 노른자를 뭉쳐놓은 것 같은 질퍽질퍽한 느낌의 반고체상의 액체가 담겨 있다.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어 구글신의 도움을 받아보았다. 위키피디아 왈, Advocaat란 계란 노른자, 설탕, 및 브랜디로 만든 네덜란드의 토종 술로, 그 알코올 도수가 무려 14~20%에 달한다고 한다. 이 술에 레모네이드를 섞으면 스노우볼이라는 칵테일이 되기도 한단다. 으... 한 번 먹어보고 싶다.
넷 째, 네덜란드의 화장실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 역시 깨끗했다. 그런데 화장실 칸 안에 휴지통이 없다. 이건 뭐지. 휴지는 무조건 변기에 버리라는 건가. 물론 한국에서도 나는 볼일을 본 뒤 휴지는 무조건 변기에 버린다. 하지만 한국 그 어느 곳의 화장실도 변기 안에 화장지 버리는 것을 '권장'하는 곳을 본 적은 없다. 한국의 변기는 언제나 일종의 어떤 암묵적인 지령을 내리고 있지 않던가? "변기에 버려도 뭐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왠만하면... 왠만하면 휴지통에 버려라..."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항상 휴지를 변기에 넣으면서도, 나는 어떤 일말의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지가 못했던 것이다. 괜히 누군가의 말을 어긴 듯한 느낌, 혹은 누군가의 기분을 언짢게 만든 느낌이랄까.
하지만 네덜란드의 변기는 노골적으로 외치는 것이다. "휴지통 따위는 없어. 니가 쓴 휴지는 무조건 내 입에 넣어야만 해" 그래서 상대적으로 네덜란드의 변기 위에서 나는 조금 더 큰 자유감을 느낄 수 있었다. 휴지를 변기에 넣으면서 나는 최초로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 방문했던 독일이나 빈의 화장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공중화장실에서 휴지통을 찾기는 힘들었다. 변기 위에서 볼일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대체 이놈의 민족들은 무슨 자신감으로 휴지통을 놔두지 않은 걸까. 어째서 그들은 그들의 변기의 능력을 이토록 과신하고 있는 걸까. 이들은 우리 한국인보다 변을 보고 난 뒤 평균적으로 휴지의 양을 적게 쓰기 때문에 변기가 막힌 경험을 자주 하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이지 더러운 민족인 셈이군. 화장실을 나가는 이들의 속옷에는 언제나 데칼코마니와 같은 잔상이 남아 있을테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어나가던 나는 볼일을 다 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뒷처리를 한 뒤 바지를 입고 일어났다. 일어나니까 바로 변기 물이 자동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나는 거기서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으니... 나는 거기서 흡사 나이아가라폭포와 같은 장관을 목격했던 것이다. 물이 얼마나 세차게 내려가는지 변기 물이 바깥으로 튈 정도였다. (정말로 물방울이 바깥으로 튀고 있었다) 난 지금껏 그 어떤 변기에서도 저와 같은 강력함을 맛본 적이 없다. 이곳의 변기는 한국의 변기와 달리 특히 앞쪽 (우리가 앉아 있을 때 우리의 성기 쪽) 에서 엄청난 물이 쏟아졌다. 한국의 변기는 둥근 원을 둘러가면서 골고루 물이 쏟아져 나오지 않던가? 그런데 이곳의 변기에는 어떤 '주류 물줄기'와 '비주류 물줄기' 같은 것이 있어서, 앞쪽에서 가장 많은 물이 쏟아지고, 나머지 물이 원을 둘러가며 쏟아지는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 물의 세기라면 이들이 변기의 능력을 과신할만 하기도 하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만약 정말로 물의 세기가 너무 세서 휴지통이 필요 없는 것이라면, 이 변기를 한국에 수입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의 경험들
1. 젠틀맨 잭
암스테르담 공항 주류점에서 발견한 젠틀맨 잭이라는 술. 나는 개인적으로 잭다니엘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편인데, 이 술은 어떤 맛일지 대단히 궁금했다. 한국에도 있으려나? 있으면 사고 싶다.
2. Smoking Kills
"Smoking kills"라고 커다랗게 써붙인 담배 문구. 정말 담배 피고 싶은 맛 안나게 생겼다. 가끔 이런 걸 보고 있으면, 마치 맛깔스러운 음식 앞에 <이거 먹으면 x나게 살 찜> 이라고 써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좀 어처구니 없을 때가 있다. 맛있게 먹지도 못하게 하면서 그렇다고 속시원히 단념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그런 것.
철학도의 독일 여행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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