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erleugnung]의 글/사적인 정리

한 철학도의 독일여행기 ⑥ : 베를린 – 도로텐슈타트 공동묘지, 베벨플라츠 (4/7)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14. 4. 28.

베를린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

아침에 일어나보니 간밤에 비가 와 있었나보다. 한국에 있을 때 내가 평균적으로 잠드는 시간은 새벽4시, 기상시간은 12시 정도였는데, 여기 오니까 딱 12시 정도에 자서 7시에 일어난다. 먼 타국 땅에 와서야 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심해서 TV를 틀었더니 홈쇼핑 채널이었다. 아마도 뱃살 제거용 운동기구 같은 것을 팔고 있었던 것 같은데, 프로그램의 구성이나 화면 같은 것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너무나도 흡사해서 놀랐다. 게다가 성우의 목소리 톤까지도 똑같았다. "단돈 39900원!!!"의 어조 그대로, 언어만 독일어로 바꿨다고 생각하면 된다. 위의 사진에서 얼굴만 가려보라. 거의 한국의 홈쇼핑 채널과 동일하지 않은가? 홈쇼핑 채널을 구성할 때 무슨 만국 공통의 매뉴얼이라도 있는 걸까?

다이어트 용품 광고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배가 고팠다. 이 숙소는 아침식사를 제공해준다 하길래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독일에 있는 숙소는 거의 모두 같은 구성의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대부분 빵, 치즈, 햄과 살라미, 그리고 커피 또는 쥬스로 이루어져 있다. 삶은 달걀은 제공하는 곳은 많아도 생각보다 스크램블 에그를 제공하는 곳은 거의 없는데, 이 숙소는 스크램블 에그를 줘서 좋았다. 그리고 저 사진에 나와 있는 빵... 정말 맛있다. 맛은 그냥 일반적인 바게뜨 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겉은 약간 딱딱하고, 속은 굉장히 부드럽다. 다른 서양인 여행객들도 이 빵을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숙소에서 아침을 먹든, 항상 이 빵이 가장 먼저 동 났다.

내가 먹은 아침의 조감도

당시 함께 밥을 먹고 있던 다른 식솔들. 보기 힘든 동양인 여행객도 있었다. 말하는 걸로 들어봐서는 아마도 중국인인 것 같았다.

오늘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도로텐슈타트 공동묘지다. 김덕영 교수의 기사에서 보길, 이 묘지에 헤겔을 비롯한 여러 유명인들이 대거 묻혀있단다. 묘지의 한 가운데에서 독일 사상의 정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여행책에도 이 묘지에 대한 소개는 나와 있지 않았다. 대충 구글링을 통해 지금 이 숙소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정보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일단 카운터에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카운터에는 스페인 계통의 억양을 가진 여자가 나와 있었다.

"혹시 도로텐슈타트 묘지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나요?"

"어디요?"

내 발음을 못 알아들을 리는 없다. 난 독일어의 발음에는 자신이 있었다.

"도오로테엔슈타트요. D-o-r-o-t-h-e-e-n-s-t-a-d-t. 거기에 독일의 훌륭한 철학자나 그 외 학자들의 묘가 모여 있다던데요... 이를테면 헤겔의 묘라든지..."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도로텐슈타트 묘지를 찾는 사람이 그렇게나 없는 걸까? 그래도 바로 근처에 있다는데 모른다니까 어딘가 좀 실망스럽기도 했다. 결국 나는 구글맵에 의존하기로 했다. 구글지도로 찾아보니까 숙소에서 걸어서 10분도 안걸린단다. 뭐지? 내가 잘못 찾은걸까? 사실은 엄청나게 멀리 있는 게 아닐까? 숙소를 나와 구글맵이 알려주는대로 길을 따라갔다.

 

도로텐슈타트 공동 묘지

지도에 의하면 분명 이 건물 뒤쪽에 묘지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 건물은 호텔이란다. 이 호텔을 가로질러가든가, 아니면 뺑 돌아서 이 호텔의 뒤편으로 갈 수 밖에 없다. 한 번 호텔을 가로질러 가보기로 했다.

호텔의 중앙 정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왼편으로 담이 보이고 그 너머로 정원 같은 것이 보였다. 그래 아마도 저곳인 것 같다!!!

드디어 도착한 도로텐슈타트 공동묘지. 묘지는 굉장히 소박했다. 표지판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동네 한가운데 있는 조그만 공원 같은 느낌이랄까? 근데 그 공원이라는 게 담벼락들로 둘러쳐져 있어서 문을 통하지 않고는 안을 들여다볼 수 도 없는 그런 종류의 공원이었던 것이다.

김덕영 교수의 칼럼에 따르면 묘지 입구 부근에 각 인물들의 묘지 위치가 상세하게 지도로 나와 있단다. 그런데 내가 본 표지판들은 하나 같이 부실했다. 아주 유명한 몇 명의 인물 (그러나 대부분 나의 관심사가 아닌 인물들)들의 묘의 위치에 대해서만 나와 있지, 내가 보고 싶은 피히테라든지 헤겔의 묘에 대한 정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찾아갈 사람을 위해 미리 이야기해주자면, 헤겔과 피히테의 묘는 이 사진처럼 정문 쪽에서 바라봤을 때, 저 뒤편에 보이는 담장 너머쪽의 묘지 쪽에 위치해 있다. 사진의 정중앙쪽에 보면 돌기둥 몇개로 된 제단 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묘에서 한 줄 정도 건너 뛴 곳에 그들의 묘가 위치해 있다.

이 사진을 보라. 그러면 얼마나 묘 찾기가 힘든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이 묘비들을 하나 하나 다 읽어가며 헤겔의 묘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머리가 뽀개지는 줄 알았다. 저 조그만 글씨들을 집중해서 읽고 나니 나중에는 외사시가 생길 정도였다. 묘지 찾을 때 팁을 주자면, 이 묘지는 두 개의 분획으로 구성돼 있는데, 앞의 정문 쪽 분획에는 비교적 최근의 인물들의 묘들이 몰려 있고, 뒤쪽 분획에는 비교적 오래된 사람들의 묘가 몰려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초반에 정문 쪽에서 찍었다던 사진에서 보였던 그 돌기둥으로 된 제단 바로 옆쪽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부부의 묘가 있다. 브레히트의 작품 같은 것을 읽어본 적도 없고, 그가 왜 유명한지도 잘 모른다. 다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적이 많아 유명하다는 것만 알 뿐. 혹시 몰라 사진을 찍어놓았다.

하인리히 만의 묘도 있다. 이 사람에 대해서도 잘은 모른다. 다만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적은 있다.

브레히트 부부의 묘에서 바로 한 줄 정도 뒤쪽으로 나아가면 바로 그곳에 헤겔의 묘가 놓여 있다. 처음에 헤겔의 묘를 찾지 못해 그 주변을 한참이나 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이나 이 묘에는 특색이 없었다. 한 여행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남기길, 이 묘는 헤겔만큼이나 소박하게 정돈돼있다는 느낌을 받았단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전혀 동의하지 못했다. 이 묘가 소박하다는 그의 묘사에 동의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헤겔'만큼이나' 소박하는 서술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헤겔'만큼' 묘지가 구성되려면 그 묘는 엄청나게 장엄해야 한다. 비록 그가 생전에 그닥 부유한 생활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그는 사상적으로는 엄연히 세계정신을 이야기하고 세계의 역사를 이야기했던 사람이다. 철학의 역사에서 그만큼이나 거대한 철학세계를 구축했던 사람도 드물다. 그런 사람에게 '소박하다'라는 수식어가 과연 어울리는 걸까? 여하튼 철학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한 사상가의 묘 '치고는' 엄청나게 소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헤겔은 자신이 죽거든 피히테의 옆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의 바람대로, 그의 몸은 피히테의 묘 바로 옆에 고이 모셔져 있다.

한참이나 이 자리 앞에 서 있었다. 뭔가 특별한 감정을 느껴서라기보다는, 그냥 거기에 조금 더 서 있다 오고 싶었다. 내 개인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는 이 장소에,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난 개가 아니니 영역표시를 할 수 도 없고... 쪽지라도 한 장 남기고 싶었다. 묘비 아래쪽에 보니 누군가가 꽃과 함께 어떤 종이쪼가리를 남겨두고 간 것 같았다. 뭔가 좀 허세같지만, 뭐 누가 보겠나 싶어 나도 거기에 작은 쪽지 한장을 남기고 왔다. <당신의 철학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피히테의 묘나 헤겔의 묘 앞에는 이런 문구의 석판이 하나씩 박혀있다. 석판에는 EHRENGRAB LAND ERLIN 이라고 써있다.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 구글링을 해보니 베를린 시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 중 후손들이 그의 묘를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시에서 맡아 관리해주는 것이란다. 유명인물들의 묘지를 찾기 위해 이 석판이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는길에 마르쿠제의 묘에도 잠시 들렀다. 그의 저작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으나, 후에 언젠가 한 번쯤은 읽어볼 날이 생기게 될 것 같다.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이라고 유명한 건축가란다. 지나가다 우연히 그의 묘를 발견해서 이렇게 사진을 찍어보았다.

묘에서 나와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 전 날 밤에 혼자 터키식 그라탕을 먹었던 식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보니 식당 이름이 Mantée다. 혹시나 어제의 그 여종업원이 있으면 인사나 하고 갈까 해서 봤더니만 다른 여자가 나와 근무하고 있었다.

 

베벨플라츠

전철을 타고 이번에는 베벨플라츠로 향했다. 베벨플라츠는 사실 훔볼트대학교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전에 훔볼트 대학교에 방문했을 때 모르고 이곳을 그냥 지나쳤기에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내가 이곳에 방문한 목적은 딱 하나였다. 바로 아래의 동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책이 쌓여 있는 동상.

독일의 온갖 훌륭한 저서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하나의 동상을 형성하고 있다. 이 동상 앞에서 독일 사상의 훌륭함에 감탄사를 내뱉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분명 동상이 놓여있어야 할 이곳에 동상은 놓여있지 않았다. 구글의 어느 사진을 봐도 분명 이곳, 즉 훔볼트 대학의 맞은편이면서 동시에 베벨플라츠의 경계부분에 이 동상이 세워져 있어야 했다. 나는 구글에서 사진 몇 장을 다운로드 받은 뒤,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동상의 행방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장난이 아니라 정말 한 6명 정도에게는 물어본 것 같다. 그것도 여행자 같은 사람은 배제하고 순수 이 동네 사람인 것 같은 독일인들에게만 질문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 동상의 출처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다. 심지어 이 동상이 이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뭘까? 이 동상이 엄청나게 짧은 시간 동안만 전시되어 있었던걸까? 아니면 이 사람들에게 이 동상은 별 의미가 없어서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던 걸까? 약 30분에 걸쳐 이 동상을 찾아 헤매다 결국 난 포기하고 말았다.

베벨플라츠 한켠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바닥을 구경하고 있었다. 바닥에 그림이라도 그려져 있나? 궁금해서 다가가봤다.

여행책에서 봤던 "침몰한 도서관(Versunkene Biblithek)"라는 기념물이다. 1933년 5월 10일 나치는 이 자리에서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사상을 말살하기 위해 약 2만권에 달하는 '불온서적'을 불태웠다고 한다. 당시 소실된 책은 하인리히 하이네, 토마스 만, 칼 맑스 등의 것이었는데, 독일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5년 이런 기념물을 만들었다고. 이 유리 아래쪽에는 약 2만권의 책을 담을 수 있는 백색 빈 책꽂이가 놓여있다.

유리 안은 실제 이런 모습이라고 하는데... 난 이런거 보지도 못했다. 뭔가 희미하게 책장 같은 것이 보이기는 하는데, 위 사진처럼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밤에는 조명 같은 것을 켜놔서 잘 보일지 몰라도, 낮에는 저 안이 지독히도 잘 안보인다. 게다가 유리 안쪽에 습기 같은 것이 껴 있어서, 밖에서 아무리 발바닥으로 문질러 봤자 그 얼룩은 없어지지가 않았다. 뭔가 조형물 내의 습기 조절이 잘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낮에도 안쪽에 조명을 좀 켜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 앞쪽에는 이런 현판이 바닥에 붙어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하인리히 하이네의 글귀란다. 해석을 해보면 이런 내용이란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책을 불사르는 곳에서는 결국 인류도 불태우게 될 것이다"

조금 번외의 잡설을 하나 이야기하자면, 이 침몰한 도서관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한 블로그에 방문하게 됐었더랬다. 블로그의 주인은 광화문 광장을 비판하기 위해 글을 남긴 듯 했는데, 그가 쓴 글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골자는 이런 것이었다.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의 동상처럼 상투적이고 작위적인 의미화 작업만이 있을 뿐, 진정 역사적이고 의미있는 것들은 전혀 없는 반면, 이 훌륭한 나라 독일의 베벨플라츠에는 침몰한 도서관과 같은 아주 자연스럽고 비작위적인 조형물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한겨례 기자의 글 같았다. 광화문 광장이 시민의 것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국가 권력 수행의 한 수단으로써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에는 나도 어느 정도 동조하는 편이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의 조성이 상투적이고 멋대가리 없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의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의미화'라는 건 원래 그 본성상 작위적인 것이다. 기념물을 만들고, 동상을 세우고, 광장을 만든다는 그 행위 자체는 이미 그 시작부터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고, 기억에 의존해 과거를 '재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서 '더 자연스러운' 것을 찾는다는 건 사실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이 더 자연스러우냐를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더 의미화와 재구성을 잘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나는 세종대왕상과 여러가지 그와 관련된 조형물들, 그리고 한글박물관 등이 나름 이러한 의미화 작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