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다르멘 광장
베벨플라츠를 나와 젠다르멘 광장으로 향했다. 젠다르멘 광장은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간주된단다. 물론 실제로도 아름다웠다. 보도블럭이 깔린 광장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독일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서양인들이었다. 동양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이 날은 날씨가 좋은 편이라 벤치에 앉아 잠깐 햇볕을 쬐었다.
오늘 저녁에는 빈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조금 더 무리를 해서 베를린을 둘러보기로 했다. 베를린의 옛날 시가지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니콜라이 지구로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우연히 한글 간판을 발견했다. 독일에서 한글 간판을 발견하는 건 그다지 쉽지 않은 일이다. 강남역에서 본 듯한 강남포차 체인점이 들어서 있었다. 낮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었다. 물론 가볼 마음은 없었다. 한국에서도 안가봤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온지 이제 3일째 밖에 되지 않는데 벌써 삭신이 쑤신다. 특히 어깨와 발이 많이 아프다. 나름 발 안아프게 한다고 비싼돈 주고 아웃도어 신발을 하나 사왔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 평소에 운동이나 좀 해둘 걸...
분명 여기 쯤에 있다고 했는데... 지도를 보면서 길을 따라오는데 니콜라이 지구가 보이지 않는다. 일단 표지판이 없어서 찾기가 힘들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며 걸어가다가 좌측을 봤는데 좀 넓다란 골목길 위쪽에 조명으로 된 플래카드 하나가 걸려 있다. 니콜라이 지구다!!!
니콜라이 지구
골목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노인이 상자로 된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영화 같은데 자주 나오는 악기인데, 이름이 뭔지를 모르겠다. 혹시 아는 분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라... 이 악기 연주하려면 뭔가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자세히 옆에 다가가서 보니 그냥 손잡이면 돌리면 되는 것 같았다. 노인 곁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흡사 우리나라의 뻥튀기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노인은 한참을 노래부르더니 아이들에게 이 수염이 가짜같아 보여도 사실은 진짜라고 하며 아이들로 하여금 당겨보게 하기도 했다.
니콜라이 지구는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그냥 조그마한 광장 같은 것이다. 그 광장을 중심으로 건물 사이에 작은 여러개의 골목들이 나 있고, 그 골목들에 상점이 들어서 있다. 외형은 모두 오래된 건물들이지만, 들어서 있는 상점들은 모두 현대식 건물이다. 옛스런 분위기가 나서 참 마음에 들었다. 혹시 독일로 여행오게 된다면, 이런 거리들을 많이 거닐어보기를 권한다.
빈에 도착
비행기를 타고 빈에 도착했다. 사실 처음에 여행을 계획할 때 나는 빈이라는 곳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고 있었다. 빈은 내게 그저 클림트와 실레의 그림을 보기 위해, 그리고 프로이트 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가는 장소일 뿐이었다.
이미 시간이 늦었기에 얼른 숙소에 먼저 가서 짐을 풀었다. 키크고 귀엽게 생긴 백인 청년이 숙소를 관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여자들이 이 남자를 봤으면 정신 못차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빈에 있는 숙소 아니랄까봐 방 한켠에는 클림트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 근데 색깔은 다 바랬다... 햇볕을 쬐서 그런가.
좀 출출하기도 하고 술이 땡기기도 해서 거리로 나왔다. 밤 열시 정도 됐던 것 같은데 거리가 한산했다.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상점들도 거의 문을 닫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얼른 밥먹을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한 소박한 바를 발견, 그곳에 들어갔다.
바 안에서는 한 중년 무리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저들에게 등을 보이는 자세로 바에 앉았는데, 계속 내쪽을 쳐다보길래 뭔가 꺼림칙해서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알고보니 내 머리 위에 있는 티비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티비에서는 축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독일인들은 축구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바텐더도 참 잘생겼다.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게이들이 귀여워할 상이라고 해야 하나? 숙소에서 봤던 그 남자와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기는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여태까지 빈에 도착해서 본 젊은이는 두 명인데, 두 명이 다 잘생긴 걸 보니 이 민족은 다들 잘생긴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메뉴판을 봤지만, 역시나 알 수 없는 이름들만이 나열돼 있을 뿐... 나는 이번에도 바텐더에게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술을 추천해 달라 했다. 바텐더는 화이트 와인을 추천했다. 달콤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전에 여행책을 읽어보니 독일의 유명한 음식 중에 국물에 미트볼을 띄운 음식이 있단다. 그런데 여태까지 그놈의 것을 못먹어본 것 같아 혹시나 이런 종류의 음식이 있느냐고 바텐더에게 물었더니 그런 게 있단다!!! 국물의 맛은 꽤 괜찮았다. 하지만 미트볼의 풍미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약간 달랐다. 소세지의 풍미도 아니고 그렇다고 흔히 먹는 미트볼의 풍미도 아닌 것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먹은 음식의 이름은 알아야겠으니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 친절한 바텐더가 직접 펜을 들고 이름을 적어주었다. 읽으면 레베르크뇌델주페 정도 되겠다.
빈에서의 첫 만남
한참 맛있게 미트볼을 먹으며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세 명정도의 젊은 청년들이 들어와 뒷자리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 오분 쯤 지나니 그 중 한명이 내 옆에 앉아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잡지를 보기 시작했다. 난 그래도 빈에 왔으니 빈의 주민들과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 말을 걸어보려 했다. 그런데 뭐라고 말을 걸지? 다짜고짜 이름을 물어봐야 하나? 어떤 식으로 작업을 걸어야 할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녀석의 옆에 담배갑이 있는 것을 발견, 하나의 묘안이 떠올랐다.
"있잖아. 너네 동네에서는 담배 빌리는 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니?"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가져다 펴."
"응 고마워. 나 불도 없는데..."
"아 그래 이거 갖다가 써 ㅎㅎ 근데 너네 나라에서는 담배 빌려피는 게 실례니?"
"아아니!! 우리나라도 전혀 그렇지 않아. 다만 내가 듣기로 독일계통 사람들은 좀 합리적인 구석이 있다고 들어서... 혹시나 실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ㅋㅋ"
"아 그렇구만 ㅎㅎ"
"사실 내가 어제까지 베를린에 있다가 방금 막 빈에 도착한 건데 말이지, 내가 여행 떠나기 전에 듣기로는, 독일 사람들은 질서 같은 것도 좀 잘 지킨다고 들었거든? 근데 보니까 무단횡단하는 사람도 무지하게 많더라 ㅋㅋㅋ"
"뭐 다들 그래. 나도 잘 안지키고 ㅎㅎㅎ"
이 청년은 인문계열 학생으로, 잠시 학교를 휴학중이라고 했다. 지금 읽고 있는 잡지가 뭐냐고 물으니 그는 자신의 짧은 영어로 굉장히 열의를 갖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자신이 건축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난 건축학에 관심이 많아. 특히 이 사진처럼 자연의 목재를 갖고 만든 집 같은 것에 관심이 많지. 내 생각에 이런 자연의 재료로 건물을 짓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자연의 재료로 만든 건물 안에 살아야 사람도 건강해지고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해"
"너의 그 생각이 굉장히 훌륭한 생각이라고 봐. 나도 건축물의 구조가 인간의 기분이나 심리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에 꽤나 관심이 많거든. 그럼 너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건축 관련 일?"
"아니, 이런 건 그냥 관심이 있어서 읽어보고 있을 뿐이야. 무슨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고민이 많아"
물론 내 영어 실력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이 청년의 영어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한 편이어서 말하는 속도가 대단히 느렸다. 내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와서 영어라는 측면에 있어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물론 내가 오랫동안 이 지역에 거주한 것이 아니고, 단기간 안에 이것들을 파악한 것들이기 때문에 나의 판단에는 오류가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주기 바란다) 첫째로, 노인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하지만 젊은 이들은 대부분 영어를 좀 한다는 것. 둘째로, 이 젊은이들이 구사하는 영어가 회화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것. 회화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일단, 그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무리없이 행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가격을 계산한다든지, 물건을 구매한다든지, 물건을 판매한다든지, 길을 가르쳐준다든지 하는 등등의 것들 말이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이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알아듣고, 빠른 속도로 말할 수 있다. 발음도 꽤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대화가 깊숙하게 진행되면 애를 먹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독일 청년들의 워드 파워는 생각보다 약한 편이다. 알고 있는 단어의 개수만 따지자면, 심지어 한국인이 더 많이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던 것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일단 시작에 앞서, 이들이 내 발음을 못알아 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나는 발음은 굉장히 좋은 편이기 때문에...) 첫 번째 예는, 첫 째날 숙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방이 좀 춥길래 관리인에게 찾아가 히터(Heater)를 좀 틀어줄 수 있냐고 했더니 히터가 뭐냐고 되물었다. 아 이들은 히터라는 단어를 안쓰는 건가 해서 Air conditioner에 반대되는 기계라고 했더니 Air conditioner가 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방을 따뜻하게 만드는 기계를 어떻게 트냐고 물었고, 그 때 가서야 직원은 "아, 그거요?" 하면서 사용 방법을 알려주었다.
두 번째는, 정육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육점 주인은 물건을 판매하는 데 있어 전혀 부족함이 없는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특정 고기를 가리키면서 이것을 먹을 때 끓여(Boil)먹어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신의 단어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면서 다시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돌려서 물에 넣어 요리(Cook)해 먹어야 하냐고 되물었고, 그 때 가서야 그는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지금의 이 바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이 청년에게 한참 뭔가에 대해 설명을 하던 도중 endure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청년은 그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돌려서 be patient라는 식으로 돌려 설명했고, 그제서야 이 청년은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빈의 청년과 나는 그렇게 한 삼십분 정도 대화를 한 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빈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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