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관념론을 읽다 뇌가 처리능력의 한계를 일으켜 전신이 캡사이신을 먹은 것처럼 저릿저릿 했다. 영화를 보고 감상문이라도 대강 휘갈겨놔야 뭔가 핑계가 될 것 같아 미뤄뒀던 영화를 재생시켰다. 간혹 위디스크 성인란에 "레즈" "여자끼리" 등의 키워드를 시나브로 입력하고 레아세이두를 흠모하는 나로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이하, 블루)는 역시 탁월한 선택이였다. 요즘 영화를 자주 보지 않았지만 이 영화가 올해 봤던 영화 중 손에 꼽을 영화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화는 생각보다 진득한 이별을 그려내고 씁쓸한 계급의식을 드러낸다. 사실 그 후자인 계급차 (이것을 계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워 보이긴 하다.)혹은 지식수준의 차이가 그 진득한 이별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서 후자에 좀 더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과거 '내 집으로 와요' 라는 명작 만화책 역시 이러한 느낌의 이별을 다루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가슴이 저몄다면 그 만화책 역시 추천하는 바이다.
영화는 성장기에 있는 한 여성의 성 정체성과 자유로운 삶과 상대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한다.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관통하는 장면은 아델과 엠마가 각자의 집에 가서 부모님들을 만날 때 드러난다. 아델에 집에 갔을 때 아델의 부모는 엠마에게 순수미술이 후에 직업으로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가를 묻고, 그 반대로 엠마의 부모는 아델에게 꿈을 묻는다. 아델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하며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유치원 선생으로서의 삶에 지친다. 그렇다고 해서 또 글을 업 삼아 전선에 뛰어들 용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갈등이 번져 아델의 전시회에서 그것이 전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엠마와 엠마의 친구들은 예술에 대해 논하는 순간마다 아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 뭐 더 먹을 것이 없냐고 물어보는 것 뿐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웨이트리스로 전락한다. 이 때 아델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녀는 아마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생업은 정말 생업(의식주를 해결)하는데로 그치면 그만인지, 아니면 예술로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의 실력 또는 배포의 두려움의 도피처가 되어버린 것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처음엔 아이들이 좋았지만 점차 기계화 되어 예전에 학생일 때의 선생님들의 모습을 그녀는 시작한다. 일을한다는 것 자신의 직무에 자신이 최적화되어 알맞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슬픈일이다. 결국 안정감과 흥미라는 거짓의 안개는 걷히고 생업으로서의 일은 생업으로 그치게 된다.
이별의 순간, 아델과 엠마 사이에는 초반에 그들 사이에 흐르던 철학얘기도, 미술얘기도 사라진다. 비록 그들은 서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아쉬움과 영원함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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