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주말활용의 방향성을 상실한 채 동네를 어슬렁 거리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나오는 여학생들이 이병헌에 대한 비난을 늘어놓는 것을 들었다. 다행히 소변에 관련된 얘기는 아니였고, 이병헌이 여자들 외모로 등급을 나눈다더라 어쩐다더라 이민정이 아깝다라는 얘기들로 깔깔깔깔
'더 헌트' 봄.
영화는 소문을 믿음으로써 피해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한 그 소문에 대한 맹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클라라는 루카스의 친한 친구의 딸이다. 루카스는 그런 클라라의 유치원 선생님이기도 한데, 어느 날 클라라는 유치원 원장선생님에게 루카스가 자신의 막대기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유치원 원장은 거의 부녀회회장급의 소문전달력을 가진 중심인물이기에 진위가 확정되지 않은 소문은 급속도로 확산되게 되고, 루카스는 직장에서 짤린다. 결국 루카스는 법정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지만, 마을 사람들의 인식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루카스는 기르던 개를 죽임당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 마트에서 갈비 사려다가 맞아서 되려 갈비가 나간다. (이후 스포 생략)
1.
영화에서 보여지는 루카스는 꽤나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다. 영화 안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그러한 일을 벌이지 않을 성격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악의성을 띈 소문은 삽시간에 신뢰성을 부여받게 된다. 최초 유포자의 역할을 한 유치원장은 클라라의 거짓진술을 맹신하고 소문을 퍼뜨리는 핵심인물인데, 그녀의 인식을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인식이란 다음의 두 가지의 혼합 또는 과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식 = 지각(개별 사건들에 대한 간접적 인식. 여기에는 상상의 범위도 포함된다) + 사유(사물에 대한 직접적 인식)
허위소문에 잠식된 유치원장은 지각 단계에서 오류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각과 사유 두 가지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인식이라는 결과를 이루어 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떠한 사실에 대한 옳고그름의 선은 유동적이라는 것, 그것에는 언제나 반대의견이 있고 그에 따라 진위판단의 선은 옮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각하고 있지 않다면, 소문에 대해서 사람은 지각->사유 과정으로 취약하게 사건에 진실성을 부여하게 된다. 예컨대 흔히 달리는 인터넷의 글들과 그 리플들에도 이러한 과정이 진행된다. 리플들을 지각할 뿐, 사건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다. 지각한 것이 사유가 되고 곧 인식이 된다.
2. social cascade : 사회적 폭포효과
소문, 근원지(아이)에 대한 신뢰(신뢰가 만들어지는 이유). 그것은 곧 전달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소문의 진실성은 그 사건의 발원지에 대한 신뢰와 논리성 보다는 산포된 정도에 따라 부여된다. 그 산포된 정도가 일정치가 넘어가게 되면 소문을 믿는 사람은 소문 그 자체를 믿게 되어 발원지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내보여도 그 발원지에 대한 입장마저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일반적인 생각이 되면 소문을 일으킨 자마저도 소문을 믿게 된다. 다수의 의견은 중립으로 향하지 않는다. 다수는 필연적으로 대다수의 의견으로 방향이 기운다.
3. 무의식의 맹점
cctv에 의존하지 않는 한, 사건의 발생여부는 피해자의 기억에 의존하게 되는데 피해자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피해자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게 되면 피해자의 기억은 충분히 조작될 수 있다. 어렸을 때 자신이 근친에 의한 강간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는 여론과 그러한 경험이 있다고 신고한 여성들이 있었는데, 그 신고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더 그 숫자는 급증했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강간을 당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의식이란 단어는 사람을 넘겨 짚기에 얼마나 유용한 도구인가. 그것은 사람을 오해하고 그 오해를 진작시키기 위한 아주 좋은 도구가 된다.
4. 잘잘못을 가리는 방법
여기서 루카스를 가해자로 판단하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이것이다.
1)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 어린아이의 피해 정도가 더 크다.
1)과 같은 경우는 당연한 얘기지만 기본전제가 틀어졌다. 어떠한 사건에 대해 가부를 판단함에 있어 그 사람의 평소 행실이나 성향을 참고할 수는 있다. 한 사건이 갑자기 툭 던져진 것으로 보기보다는 당사자의 행동간에서 나온 어떤 흐름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신분이나 나이가 고려되는 것에 대해서는 고려를 해보아야 한다.
최근 경찰청장이 구라로 보이는 얘기를 하는데도 어떤 이는 명문대에 외무고시를 패스하고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경찰에 몸담에 경찰청장까지 한 사람의 말이 거짓일리가 없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여기서 살펴 볼 수 있 듯, 논리의 진중성은 그 사람이 가진 신분 또는 지식의 척도로 대변되지 않는다. 어린아이 역시(물론 말도 안 되는 3-4살은 당연히 제외) 그러한 나이라는 특성이 진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쓰일 수는 없을 것.
2) 역시 판단의 기준으로 쓰일 수 없다. 판단은 사건 당시의 진술과 사건의 진실성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미래의 시점에서 두고, a 가 틀렸다고 할 경우 a 가 겪게되는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 사건의 진위를 판단하는데 개입해서는 안 될 것이다.
5.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에 정말로 루카스가 가해자인 것으로 밝혀졌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한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 역시 편향된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조롱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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