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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몽글몽글'이란 무엇인가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0. 11. 10.

주말 동안 침대 위를 뒹굴거리며 여유를 즐기던 아내가 말했다. "이런 게 진정한 행복이지. 남편과 함께 이런 몽글몽글한 느낌을 함께 가지는 것." 큰 시험을 앞두고 있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는, 백번 양보해서 앞의 문장은 무슨 말인지 이해라도 할 수 있지만, 뒤쪽 문장은 아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몽글몽글하다는 말 처음 들어봐?" 아내는 함께 있을 때의 그 좋은 느낌을 모르냐고 물었고, 나는 함께 있으면 좋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몽글몽글함'이라는 수식어와 동일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내가 그 감정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해줬는데, 내가 이해를 잘 하지 못하고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아내의 답답함은 이내 충격으로 변하는 듯 했다. "난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우리 둘 다 그 느낌을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만 그랬던 거야? 그 많은 시간 동안을...??"

 

어떻게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서로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서로 동일하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마치 라쇼몽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정신의학적인 설명을 보태라면 보탤 수도 있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양육과정에서 감정을 억압하고 지식화하는 데에만 습관이 들어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 순간에마저, 그 감정이 '행복한 것이다'라는 의미만을 받아들일 뿐, 그 행복의 감정 자체를 경험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에는 한 가지 숨겨진 전제가 있다. 나와 아내가 분명 '동일한' 사태를 경험했다는 것. 다시 말해 사태 자체는 하나로 있는데, 나는 A로 받아들이고 아내는 B로 받아들였다는 식이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어떻게 경험을 공유하는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어떻게 '소통'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틀을 제공한다. 이전에 서울대에서 희랍철학 강의를 하셨던 박홍규라는 분이 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설명을 하신 적이 있다. 그 분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가리켜 '쉽게 무시하기는 어려운 개념'이라면서 변호하셨는데, 이야기를 대충 풀어보면 이렇다. 인간들은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상황에서도 A라는 '동일한 사태'에 대해 consensus를 형성하고, 그에 대해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데,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인간들의 소통 저변에 A에 대한 이데아가 깔려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냐는 것.

 

그렇지만 A가 없이도 소통이라는 게 발생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정신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이 세상에는 그들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세계관들이 있고, 그들의 지문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한 체계들이 있다. 가끔씩 누군가와 면담을 진행하다보면, 우리가 서로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나 깨닫는 순간이 오곤 한다.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갓잇?' '어키!' 하며 대화가 끝나지만, 결국은 그간의 대화에 의해 두 사람이 철저하게 배반당해버리는 그런 순간 말이다.

 

나와 아내는 이미 6년 이상이나 함께 '그 순간'을 경험했음에도, 한 번도 그 경험을 동일하게 공유한 적이 없고 그런 사실조차 이제서야 깨닫게 됐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세상이 경이로운 진짜 이유는, 우리가 같은 것에 대해 말하면서도 '어찌 그리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나'가 아니라, 우리가 완전 다른 것에 대해 말하면서도 어떻게 '그런대로 소통을 해나갈 수 있었나'라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그 몽글몽글이라는 단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식화(intellectualize)나 하고 앉아 있으니 참으로 우스운 노릇이다...

 

그나저나 '몽글몽글하다'가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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