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아이는 전기양의 꿈을 투사하는가.
최근 친구가 소개해준 흥미로운 기사. AI에게 계속해서 잔인한 게시물들만을 보게 학습을 시킨 뒤, 로샤검사를 시켰더니 온통 잔혹한 해석들만 내놨다고.
AI에게도 정신이라는 게 있을까. 일전에 'AI에게도 정신병이라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했다가 누군가의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뭐 나름의 일리도 있는 말이었다. 다만 그 때 느꼈던 건, 사람들이 아직도 인간의 관점을 들이밀어 정신을 규정하려는 습관 속에 갇혀 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정신은 영혼과 동일한 것도, 어떤 뇌의 회로와 동일한 것도 아니다. 정신은 일종의 어떤 기능이다. 우리는 그런 기능을 대면하며 대인관계를 맺고, 타인을 관찰하고, 나를 표현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해 뇌를 뜯어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신비로운 영혼적인 접촉을 경유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환자들을 대면하면서 그들과의 대화와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역동들을 관찰하고, 그런 역동들로부터 환자의 정신세계를 역추적해 들어간다.
그런 '역추적'을 도와주는 대표적인 검사 중 하나가 로샤 검사다. 로샤검사라 함은 기본적으로 투사(projection) 검사의 일종이다.
환자는 중립적인 형태의 잉크 반점을 보고, 거기에서 자기만의 어떤 '해석'을 내놓는다. 가령 마음 속에 공격성이 많이 심어져 있는 사람은 그러한 공격성을 카드의 반점 위로 '투사'해서 그 반점으로부터 공격성이라는 정동을 해석해낼 것이고, 성욕의 조절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어떤 성적인 심볼을 발견해낼 것이다.
검사자들은 그런 해석의 이면에서 그 환자의 정신내적 세계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투사'는 그런 투사를 시행한 주체의 내면 세계를 역추적해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로 기능한다. 투사가 있으면 그러한 투사의 출발점이 있고, 그러한 출발점에는 그런 투사를 발사한 어떤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간이 아닌 AI가 이런 투사 검사에 자기 나름의 해석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 봐서는 그것이 인간의 투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AI 노먼 베이츠는 자기 나름의 '경험'을 쌓았고, 그런 경험에 근거해 어떠한 해석을 내놨는데, 그런 해석 속에는 그의 내적 세계들의 투사물들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이런 방식들을 통해 AI의 정신세계에 접근해볼 수 있지는 않을까. 오늘도 나는 쓸데 없는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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