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내는 예전에 성악을 전공했던 사람을 상사로 모시고 일한 적이 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이 상사는 점심 식사 후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가면 항상 에스프레소에 설탕 한 봉을 타서 마셨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오래하다가 몸에 밴 습관 같은 거였다고. 그 나라 사람들은 다들 커피를 그렇게 마신다나 뭐라나... (내가 직접 본 건 아니라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 말을 듣고 혼자 공상을 하다가 습관과 관습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 성악가가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타서 마시는 건 습관에 의한 걸까 관습에 의한 걸까? 관습을 내면화하다보니 습관이 된 걸까?
생각해보면 습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흄도, 들뢰즈도 습관을 이야기했다. 원효는 이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사람도 부지불식간에 옛날의 괴상한 버릇을 드러내곤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관습의 영향을 받아 습관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데 그 습관이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 우리는 습관을 분석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관습을 분석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가령 남편은 아내를 부려먹는 습관을 갖고 있는데, 그 습관은 그냥 그가 '개인적으로 가진' 습관 같은 게 아니라, 그의 아버지를 보고 배운 것이고, 그가 속한 사회의 관습을 보며 학습한 것일 테다. 습관과 관습 사이의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사태의 원인을 개인에게 귀속하게 되고, 관습이 습관에 미치는 영향을 쉽게 무시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니까 여러분은 월요일이 싫은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싫은 겁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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