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쓸데 없는 생각 - 왜 어떤 사태들은 그것의 기원과 전혀 다른 엉뚱한 결과를 불러오는가.
'자아 심리학'의 선구자라고 여겨지는 인물 중 하나인 Heinz Hartmann은 자이의 이차자율기능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자아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일차자율기능(인식, 의도, 사고, 언어 등) 외에, 생후 갈등적인 상황과의 상호 작용에서 얻게 되는 이차자율기능이라는 것을 갖는다. 가령 가학적인 원초적 공격성을 가진 아이가, 부모의 양육방식 또는 죄책감에 대한 자신의 방어기제 때문에 과도하게 깔끔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강박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면, 그러한 '강박적 경향' 자체가 하나의 자아의 기능으로 굳어진다는 것.
어떻게 보면 별 신선할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여기에는 굉장한 발상의 전환이 숨어 있다. 일반적으로 고전적인 정신분석학은 그런 '강박적 성향' 같은 것을 하나의 '자율적 기능'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단지 '근본적인 공격성에 대한 하나의 반응' 정도로만 보기 때문이다. Hartmann은 이들에게 말한다. 표면적으로 충분히 적응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강박적 성향'을 단지 '공격성'의 일환으로만 파악하려는 것은 대단히 환원주의적이면서도 기원적 오류(genetic fallacy)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인간의 정신을 관찰하다보면 이처럼 '목적 또는 기원'과 그것의 '실제 기능'이 불일치하거나, 심한 경우 완전히 어긋나버리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정신의학자의 눈에 '사회'는 수많은 개인들의 '정신역동'이 얽히고 섥혀 있는 하나의 그물 같은 것이다. 그러한 역동들의 얽힘이 펼쳐지는 매트릭스에서 서로의 의도는 완전히 정반대되는 것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신 역동의 가장 거대한 판이라고 볼 수 있는 정치는 이런 현상을 가장 잘 보여준다. 정치의 영역만큼 '기원'과 그에 대한 '해석이나 실제 기능'이 서로 미끄러짐을 보여주는 곳도 없다.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벌인 일도 최악의 악마화로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으며, 아무리 악한 의도에서 벌인 일이라도 인민의 광적인 추종을 이끌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르시시스틱한 지도자가 철저한 자기 이익을 위해 다소 허황된 과장을 섞어 이상을 제시할 때 (최악의 경우는 이 모든 수를 내다보고 의도적으로 이런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심각한 결핍을 경험하는 개인들은 이런 지도자의 자기(self)와의 융합을 통해 스스로의 결핍을 보충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역동을 보인다. 지도자의 선동적 언급은 그것의 의도에서 떨어져나와 그것의 '내용'만 전달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내용'은 인민들이 기존에 펼쳐놓은 멍석판 위로 떨어지면서 금새 어떤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된다. 거기에서는 누구도 지도자의 자기 이익 같은 사항을 문제삼지 않는다. 현재 미국의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개인과 개인의 역동이 만나는 그 접점에서, 혹은 개인과 사회의 역동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는 분명 '어떤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거기에서는 의도의 빗나감이, 번역의 오류가, 왜곡이, 나아가 새로운 의미아 기능의 탄생 같은 것이 발생한다. 왜 내가 무심코 던진 말에 상대는 감동하고, 내가 감사의 의미로 던진 말에 크게 상처를 받을까? 그게 과연 그의 성격 탓일까? 그 모든 원인은 '그'라는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일까? 아이의 나쁜 행동을 고쳐주려고 지적하고 혼내려 하면 할수록 왜 그 아이는 오히려 그 행동에 의미를 붙이며 그 행동을 강화할까? (여기에는 물론 행동과학적 설명들도 있다)
의도와 결과가 계속해서 미끄러져나가는 어떤 '영역'이 있는 셈이다. 이 영역은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에서는 분명 어떤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인과'라고 부르는 일이, 그리고 세계가 의미를 획득하며 구성되어가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A를 욕망했음에도 어느새 B에 천착해 있기도 하고, 좋은 마음을 갖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똑같이 부패한 정치가가 되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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