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동일한 사태를 서로 다른 '경로'들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가령 A 선생은 삽화적 기억이 굉장히 좋아서, 이전에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가 어떤 시기에, 어떤 장면 속에서 이루어졌었는지 기억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B 선생은 유독 시간을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시기가 아침인지 저녁인지, 평일인지 휴일이었는지, 해질녘의 빛이 어슴츠레 비칠 때의 시점이었는지를 기준으로 그 사건을 기억하는 듯 했다. C 선생은 공간에 대한 지각이 뛰어났는데, 당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공간적인 구성 속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했다. 사태를 항상 개념적으로 따지려는 습관을 가진 나는, 당시 우리가 나눈 대화가 부정(negation)의 과정을 거쳐 어떤 지양(sublation)에 이루었던 메커니즘을 기억해냈고, 우리가 거기에서 a라는 대화 주제에 대해 의견의 합일을 보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Verleugnung]의 글 > 철학적 단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마트폰이라는 사물 (0) | 2020.08.21 |
---|---|
꼬마 한스의 '말' (0) | 2020.08.21 |
시네마 : 운동-이미지 세미나 1 복습 (0) | 2020.08.16 |
동일시와 의태 (0) | 2020.08.15 |
자본론을 읽다가 (0) | 2020.08.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