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를 항상 재밌게 봤더랬다. 좋아하는 감독들 중 하나다. <마스터>나 <펀치 드렁크 러브> 같은 영화는 그 중에서도 최애 영화에 속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가 뛰어난 수작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본 바 있으나, 볼 기회가 없었다. 요즘 시간이 남아 다시 보게 됐다. 아무래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일인지라, 일종의 정신역동적 관점을 갖고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면이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Arrogant type의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그러니까 오만한 타입의 자기애성 성격 장애에 속하는 개인의 일생을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여겨진다.
그는 타인을 신뢰하지 못 한다. 타인이란 그에게 수족일 뿐이다. 심지어 마지막에 아들과의 조우에서 그는 말한다. "사실 너는 고아였어. 내가 너를 데려온 건 단순히 사업적으로 네가 이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낄낄"
그는 언제나 타인을 깎아내려야 한다. 자신이 최고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한편에는 애정과 인정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러나 이런 개인들은 타인으로부터 도움과 사랑을 구걸하는 것이 자기가 무너지는 것과 동일하다고 여긴다. 자신은 자신 홀로 철저히 독립적이고 비의존적인 완결성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애적 개인이 가진 '자기(self)'에는 오묘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다른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전염성 물질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Self의 입장에서 진정한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확장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타자는 언제나 수단화되고, 그 자체로 지향의 목적이 되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혐오해 마지 않던 사이비 종교 집단의 신자로 굴복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무릎을 꿇고 볼따귀를 맞는 것을 감수하고 난 뒤 그가 웃으며 말한다. "이제 파이프 라인을 건설할 수 있겠군"
영화의 또다른 묘미 중 하나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장점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는, 언어 없이 언어적인 묘사를 전달하는 부분에 있다. 특히 영화 초반부 아무런 언어적 메시지 없이 단순히 주인공의 행동만을 통해 그가 '어떤 성격의 개인인지' 정확히 전달하는 그 방법론은 가히 기막히다고밖에 볼 수 없겠다.
'[Verleugnung]의 글 > 별 걸 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킥애스의 감동 (0) | 2020.08.21 |
---|---|
시네도키 뉴욕 (0) | 2020.08.15 |
[영화 리뷰] 인터스텔라 – 이게 감성적인 영화라고? (0) | 2014.11.12 |
[네이버 뿜 리뷰] 질소과자 논쟁 (5) | 2014.02.05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0) | 2014.02.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