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잘 알고 있 듯, 집 밖에 나가는 순간부터 타인을 대하는 매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마스크를 쓴다. 나 같은 경우 손윗사람의 시덥잖은 농담에 히엑히엑 하는 괴이한 웃음소리로 정적을 메꾸곤 하는데, 상대 역시 내가 가식임을 인지 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 괴이한 웃음소리로 정적을 메꿀 것을 합의한다.
그 누가 되었든 간에. 앞서 말한 상대의 마스크를 읽어내는 것에 우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생활에서 맞닿게 되는 흔한 클리셰나 다이얼로그스러운 아주 전형적인 대화에서 뻔한 리액션을 주고 받는다. 우리는 그런 상황들을 수백번 반복 학습해 왔고 어느 것이 적절하고 무난한 리액션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 리액션을 행하든 상대가 그 리액션을 행하든간에, 그것이 어떠한 법칙에 의한 주고받음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것들은 너무나 전형적이여서 진실이라고 느끼기 어렵다. 설령 그것이 진심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법칙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쉬워진다.
어느 작가가 말하길, "삶의 중대한 상황에서의 과장된 몸짓에 진실이 있다"고 했으나 나는 오히려 그런 과장된 몸짓이 진실을 은폐한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전하는 것이 눈동자라니...도통 알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눈이든 시신경이든 간에 과도하게 상대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게 된다면 그것에 진실함은 퇴색되기 마련이다. 상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애교섞인 눈과 맥심에서 훔쳐온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 떄문에 오히려 상대방은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과장된 행위가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우리는 주어진 코드를 읽게 될 뿐이다. 이런 코드화의 익숙해짐을 통하여, 진심은 그저 의미로 전락하게 되고,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은 어느덧 흔한 사랑의 말과 스킨쉽으로 대체 되었고, 지나친 사과와 친절의 요구는 진심이 아닌 연기력의 장을 펼치게 만들었다.
물론 진심이니 진정성이니 하는 것을 타인이 감별 혹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오해의 발로일 수 있다. 진심이란 것이 저런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송신자의 메세지를 조금도 전달 할 수 없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잡아낼 수 있는가의 문제지, 상대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보다 들려주지 않은 혹은 못한 얘기에 진짜 메세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이 좀 우기기로 마무리 되는데....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메세지를 찾는 것이 더 흥미롭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수환]의 글 > 뭔 얘긴지 나도 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급자족 1차 정모 :: 스팀펑크 아트전 관람 그리고 타코 그리고 무슨 이야기가 오갔나 (1) | 2014.05.09 |
---|---|
[뭔 얘긴지 나도 몰라] 기억의 재구성 (1) | 2013.08.12 |
[리뷰] 유야사쿠야는 발가벗지 않았다 (3) | 2013.07.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