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준지의 만화에는 그것만의 매력이랄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이 어떤 가속(acceleration)과 과잉의 요소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만화의 상당수는 이런 요소들에서 나오는 공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가속과 과잉이 나타나는 방식의 한 예를 들면 이렇다 - 소용돌이와 유사한 문양을 쳐다보게 된 한 사람이 계속해서 그와 유사한 상징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상징은 점차 명확해지고, 강렬해지며, 더 큰 양과 질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간다. 결국 그것은 상징을 넘쳐날만큼 과잉에 이르러 인간은 그것에 의해 잠식되고 만다...
이런 요소가 독특한 점은, 그것이 (가령 과거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봉천역 귀신> 처럼) 갑자기 깜짝 놀라게 하는 ‘jump scare’의 요소라든지 (러브크패프트 식의) 불가해한 미지의 실체라든지, 혹은 미국식 공포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살인마나 괴수를 ‘주된 요소’로 등장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토 준지의 작품이 기존 공포물의 서사구조와 갖는 공통점도 있다. 어떤 ‘불가해한’ 존재를 등장시키되, 그것을 일상적 요소 안에서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많은 공포물들은 이렇게 일상적인 것이 비일상적이고 불가해한 것으로 전환되는 곳에서 공포를 유발한다. 그 중에서도 서양 공포물에서 클리셰로 자주 반복되는 스토리는 가령 이런 것이다 : 가족들이 단란하게 살던 저택이 점차 귀신들린 장소로 변해가고, 그 안의 구성원들이 점차 미쳐간다... (<엑소시스트>, <아미티빌의 호러>, <폴터가이스트> 등등)
그렇지만 이토 준지가 일상적 요소 안에서 불가해한 차원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먼저 그는 일상의 사소하고 무의미한 요소가 평소보다 ‘살짝’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이런 점을 눈치채고, 거기에서 불안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눈에는 그 ‘살짝’ 다르게만 느껴졌던 것이 점차 증폭되면서 과잉된 양으로 지각되기 시작하고, 그것은 결국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의 정신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환괴지대>에 묘사된 이야기들에서도 그런 구성방식이 나타난다. <곡녀 고개> 편에서 주인공 남녀 커플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좀 ‘과하게’ 우는 곡녀 (상가집에서 대신 울어주는 여자) 를 보게 된다.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여주인공이 슬픈 드라마를 보거나, 감정적 동요를 느끼면 평소보다 좀 과하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눈물의 양은 점차 많아지고, 더 빈도도 잦아지는데, 그에 따라 남주인공의 불안도 점차 심해져간다.
결국 이 커플은 자신들이 전에 보았던 곡녀에 의해 뭔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따라 이승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주인공을 그렇게 계속 울게 만들었던 원흉을, 어떤 영혼을 만나게 된다. 그 원흉은 ‘가장 위대한 곡녀’로 추앙받는 한 여성의 혼인데, 그 혼은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온 몸의 수분이 빠져나가 몸이 거의 시체처럼 변해버린 상황이다. 이 여성과 그의 추종자들은 여주인공을 자신들의 후계자로 삼으려 하지만 이들은 그곳을 도망나오게 되고, 결국 위대한 곡녀의 혼은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자신의 과잉된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온 몸이 산산이 분해되고 만다...
<아오키가하라의 영류>에서도 비슷한 테마가 발견된다. 지병을 앓고 있는 남자는 여자친구와 함께 산으로 캠핑을 갔다가 우연히 어떤 동굴 속에서 들려오는 (우오오오~~ 하는) 괴음을 듣는다. 남자는 그 소리의 근원을 파악하고 싶어하지만, 여자는 두려움에 먼저 하산한다. 남자친구가 돌아오지 않자 여자는 걱정이 돼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데, 거기에서 신체가 다소 변형된, 그러나 평소보다 훨씬 건강해보이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남자친구가 말하길, 동굴에서 밤마다 영류靈流(영혼의 물줄기)가 흘러나왔는데 거기에 몸을 맡겨보았는데 몸이 아주 개운해지고, 심지어 앓던 병마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매일매일, 점점 더 많이, 더 자주 영류에 몸을 씻는 행위를 하고, 그럴수록 그의 몸도 점차 변형되어간다. 그는 여자친구에게도 그것을 권하지만 그녀는 뭔지 모를 불쾌감에 제안을 거절한다. 대신 남자친구를 계속 관찰해보기로 한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겁쟁이’라고 욕하며 그녀를 수치스럽게 만드는데, 여자친구는 모욕감을 참지 못해 영류의 중심부 즉 동굴의 중심부로 몸을 던져넣고 만다. 남자는 크게 놀라 여자를 찾아가는데, 거기에서 자신보다 더 과잉되고 더 집적된 양으로 영을 흡수시킨 (이미 심각하게 변형되어버린) 여자친구의 영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토 준지는 분명 일상적 요소 속의 불가해한 것을 다룬다는 면에서 다른 공포물들과 공통적인 측면을 갖는다. 그러나 그는 상징이나 기호를 갑자기 등장시켜 놀라게 만들거나 (jump scare), 기호 너머 기호화되지 않는 존재를 등장시키거나 (불가해한 존재자에 대한 공포), 혹은 친숙한 기호가 괴상한 기호 (괴물, 귀신들린 사람)로 변질되는 과정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사소하고 보편적인 기호가 하나, 둘 반복되고 그러한 반복 속에서 점차 그 스스로 힘을 얻어 결국은 스스로 증폭과 과잉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세계를 잠식하게 만든다. 기호는 지나치게 과잉되고, 결국 기호의 과잉이 그 자체로 기호화되지 않는 불가해한 실재를 만든다. 기호들 사이로 실재가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의 증폭과 과잉이 실재를 마주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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