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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별 걸 다 리뷰

[별걸 다 매뉴얼] 고속버스에서 책 읽고 싶은 자들을 위한 매뉴얼 - 3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13. 7. 16.

 

이번에 다뤄볼 테마는 '관계'다. 여기서의 관계란 버스 차체와 내 신체 사이의 관계라고 보면 되겠다. 개체의 차원도 중요하고 환경의 차원도 중요하지만, 그 개체와 환경이 어떠한 관계에서 상호작용하느냐 하는 것이 또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도대체 버스와 우리 몸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해피해질 수 있는걸까? 여기서 관계는 또 다시 두 가지 관계양상으로 세분화 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버스와 나 사이의 상대적 위치 관계'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팔걸이, 팔, 책 사이의 상대적 위치 관계'이다.

A. 버스와 나 사이의 상대적 위치 관계
이건 쉽게 말하면 '어느 좌석에 앉아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내가 앉는 자리가 다음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좋다. 첫 째, 옆자리에 누군가가 없어야 한다. 왜 반드시 그래야만 하냐고? 혹시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 가본 적이 있는가? 방마다 산소발생기라는 게 설치돼있는걸 본 적 있을거다. 책읽을 때 산소 공급이라는 건 정말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게 됨으로써 이 중요한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될 수 가 있다. 다음 글을 보자.

왜 항상 여행길 옆자리는 이런모습일까? ㅜㅜ

오랫만에 당진 내려가는 좌석 우!등! 버스를 탔다ㅜ 근데 옆자리에 아저씨가 앉더니 주섬주섬 신발을 벗기시작해서 도착 내내 저러고감ㅜㅜ 심지어 그 넓은 우등좌석에서 손이 손잡이를 넘어 내자리까지 침범ㅜㅜ 하필 치마입어서 더신경쓰이고 흑흑! 아저씨는 연신 "사모님"이라는 사람한테서 온 전활받는데 것도 보기싫음ㅜㅜ 내 주위에 앞뒤 모두다 얌전히 앉아가는 젊은 남자들인데 왜 하필 내옆자리만 발냄새나는 아저씨ㅜㅜ 왜항상 혼자 여행을 떠나면 옆자리는 그런사람들만 앉는걸까? ㅜㅜ

출처 : 네이버 뿜 (http://m.bboom2.naver.com/best/get.nhn?boardNo=105&postNo=157320)

위 처자의 눈물어린 절규를 보면서 모두들 옆자리를 비워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절감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옆자리에 항상 이런 아저씨들만 앉게 된다는 법은 없다. 혹시 아는가? 그대가 오늘 밤 탑승할 고속버스의 옆자리에 어느 아리따운 여성이 자리하게 될지. 이럴 때는 독서 효율이고 자시고 일단 책은 던져놓고 추파모드에 돌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런 절호의 기회에 마저 책속에 파묻히는 오를 범하지는 말자. 하지만 소위 절호의 기회라는건 로또 두장에 동시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그 확률이 낮은게 사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어떻게든 옆자리를 사수하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 옆자리에 가방을 얹어놓거나, 혹은 통로쪽 좌석에 앉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안쪽에 앉기 힘들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거 좀 눈치보이는 게 아니다.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내 마음속에 뭔가 켕기는 느낌. 우리 마음 속에는 저 하늘 위에 빛나는 별만큼이나 경이로운 도덕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내부의 정언명령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말하자면 선의지를 최대한 발현시킴과 동시에 우리의 독서욕구까지 같이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간혹 어떤 버스의 경우 기사분 뒤쪽, 즉 왼쪽으로는 좌석이 2열씩 배정되는 반면 오른쪽으로는 1열로만 배열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1열만 있는 쪽의 좌석을 미리 선취할 경우 이 모든 도덕적 책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요즘은 클릭 하나로 예약을 할 수 있는 스마트폰 어플이 많으니 그러한 어플을 이용해 미리미리 원하는 자리를 사수하도록 하자.


30cm 룰. 물론 자로 재서 지킬 필요까지는 없다.

혼자 앉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위치에 앉느냐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맨 앞자리를 선호하는 편이다. 혹시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우기로, 책과 눈 사이의 거리는 30cm정도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런데 중간 위치의 좌석에 앉게 될 경우, 앞자리의 등받이 때문에 이 룰을 지키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런 경우 앞좌석 등받이가 그늘을 조성하기도 하고, 또 앞쪽 시야를 막아 어딘가 답답한 느낌이 들게 한다. 맨 앞자리 좌석은 이런 모든 측면에서부터 자유롭다는 데서 큰 장점을 가진다.


필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하루나 이틀 전 미리 예매를 한다.

B. 팔걸이, 팔, 책 사이의 위치관계
필자는 앞으로 들뢰즈의 개념을 빌려 책을 읽는 욕망-기계를 '팔걸이-팔-책 기계'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이 기계는 팔걸이와 팔 그리고 책의 상대적 위치, 즉 배치에 따라 상이한 효율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필자는 가능한 배치를 크게 A,B,C 이렇게 세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A. 수직형

이 경우 팔꿈치와 팔, 손목 그리고 책이 모두 일직선 상에 배치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 팔은 그저 받침대로서만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배치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완충작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자세로 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버스의 팔걸이로 전달되는 버스 차체의 진동이 그대로 책까지 전달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책 속 글귀들은 사정없이 떨리게 되고, 이것은 동시에 시선의 요동을 야기한다.

 

B. 공중부양형

공중부양형 배치의 경우 일단 차체의 진동이 바로 전달되지 않아 완충작용의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 팔은 팔걸이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차체의 진동이 팔로 바로 전달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또한 차체의 진동이 엉덩이-몸체-어깨-팔꿈치-손목 라인을 거쳐서 책까지 도달하기 때문에 최소한 5개의 신체부위에서부터 완충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배치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어느 정도의 근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병자 및 노약자에게는 이 배치를 추천하지 않는 편이다. 공중부양형으로 책을 보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근육은 이두 및 손목의 굴근들 (요측수근굴근 및 척측수근굴근), 소위 말하는 '딸근'들이다. 그러므로 본인의 딸근력이 모자라다면 수련을 통해 이를 증강시키도록 하자.

 

C. 수평형

이 배치는 A형과 B형의 절충형이라고 보면 된다. B형처럼 '엉덩이-허리-몸체-어깨-팔꿈치-손목' 라인의 완충효과를 모두 기대할 수 는 없지만 '팔꿈치-손목' 라인의 효과정도는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A형에서는 왜 '팔꿈치-손목' 라인의 완충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여기서 말하는 '완충'이란 위아래로의 진동을 최소화하는 기능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팔과 손목이 아래 그림 처럼 비교적 수평으로 배열된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버스가 돌덩이 등을 밟아서) 팔걸이가 갑자기 위로 치솟았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팔걸이는 위로 올라가는 반면 팔과 손목 그리고 책은 관성으로 인해 자기의 원래 위치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반면 아래 그림처럼 팔과 손목이 팔걸이에 수직하게 분포하는 경우, 팔꿈치는 팔걸이에 계속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관성의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된다.

위의 상황을 조금 더 확장하여 위 아래로 진동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수평형의 경우가 더 진동이 덜할 것이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 다음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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