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헤겔과 그의 시대의 학문
헤겔이 생존하던 시대는 '지양'에 관하여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대는 여전히 관념론의 체계 형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가 헤겔의 철학을 순전히 역사적 현상으로서만 본다면, 그의 철학은 풍부하고 실증적인 그 시대의 여러 경향의 종합으로 나타난다. 그것도 철학적 경향의 종합인 것만이 아니다. 헤겔은 관념론자 중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자기 시대의 학문에 깊이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서 그 첫째는 신학일 것이다. 헤겔의 관심의 방향은 피히테와 셸링의 그것보다도 더 강하게 처음부터 신학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절대적 이성"의 관념론 역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이러한 명제들 때문에 논쟁하지 않는다. 그에게 이러한 명제들은 확고부동한 것이다. 세계라는 것은 그에게는 연계되어 있는 유일한 형식 체계이다. 이 체계 속에서는 보다 낮은 형식이 보다 높은 형식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관통하여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모든 물질적, 물리적-무생명적 존재는 생명적인 것으로 향하는 경향을 자신 속에 갖고 있고, 모든 생물은 의식에로의 경향을, 모든 의식은 정신적인 존재에로의 경향을, 그리고 모든 주관적 정신은 객관적 정신에로의 경향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절대적 완성에로, 즉 모든 존재자의 "대자 존재"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대자 존재"란 무엇인가?
헤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자 존재"라는 이 술어를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한다. 헤겔의 개념들은 당장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가 논리학의 "객관적" 부분에서 처음으로 대자 존재라는 개념을 만나면, 그것의 의미는 '외부에 대한 폐쇄성, 즉 단절되어 있음, 자립성' 속에서 다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대자 존재의 외적 측면일 뿐이다. 이 외적 측면의 배후에는 "대하여"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대-자-존재"는 자기 자신을 포착하는 존재, 따라서 자기 자신 속으로의 반성을 이미 거친, 그리하여 이제 이 반성을 자신 속에 보존하는 존재를 의미하게 된다. 대자 존재는 그것이 완성되면 자기의식이 된다. 이것을 더 정확히 말하면, 대자 존재라는 것은 어떤 존재자가 그것이 존재하는 대로 "존재할" 뿐만이 아니라, 또한 그것이 자기를 알면서 자신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대자 존재란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안다고 하는 의미에서 자기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존재자의 참된 존재론적 성질 (즉 누군가에 대한 그 존재자의 현상 방식만이 아닌 그런 것) 을 그것의 "즉자 존재"라고 부른다면, 동일한 존재자의 대자 존재 속에는 실은 보다 높은 존재의 단계가 놓여 있다. (이 때 이 존재자는 "즉자적"이면서 또한 "대자적"이다)
즉자 존재와 대자 존재의 이 종합을 헤겔은, "즉자-대자-존재"라고 부른다. 헤겔에 있어서 종합이 뜻하는 것은 어떤 존재자가 그 자신의 본질을 관통하여 자각적 통찰을 얻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존재자는 이러한 완전한 의미로는 하나의 자각한 본질 속에서만,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것의 최고도의 정신적 형식에 있어서만 발견된다. 헤겔에 의하면 모든 존재자는 정신적인 것의 이 최고의 형식에로 나아가는 경향을 자신 속에 지니고 있고, 또 모든 존재자는 자기 자신의 의식에로 밀고 나아가며, 그 때문에 세계의 전체 단계 영역에 있어서 보다 낮은 단계가 보다 높은 단계 영역에로 이행하는 경향이 지배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즉자 존재는 자기의 대자 존재 속에서 비로소 성취되고 실현되며 자기 자신에 도달한다는 것을 뜻한다. 대자 존재는 즉자 존재의 "진리"이다. 단순한 즉자 존재는 단지 절반일 뿐이고, 실마리이요 실현되지 못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진리는 전체이고, 즉자 대자 존재이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는 헤겔
헤겔의 범신론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전체를 완전히 지배하는 절대 이성의 전제 군주적 통치를 볼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성취하는 이성의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이성의 본질인 한에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것 또한 절대 이성의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의 생성은 연속적이면서 결코 폐쇄되지 않은 생성이다. 또한 세계의 생성은 그 자체로 절대 이성의 생성이다. 대자적 상태에 있는 절대 이성의 목적론은 근본적으로 세계 과정의 총괄적 형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세계 창조의 총괄적 형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절대 이성이 신과 동일하다면, 세계의 생성 속에 있는 절대 이성의 생성 작용은 신의 생성 작용인 것이고, 세계의 과정 자체는 신의 실현인 것이다. 헤겔철학 속에 내재하는 종교적 사유는 이러한 역동적 범신론의 형식을 받아들인다. 범신론은 관념론, 변증법과 마찬가지로 헤겔의 체계 속에서는 본질적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범신론은 내용상으로는 관념론과 변증법의 이면이라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그것의 진행에 있어서 절대 이성의 진행을 자기 자신에게 모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변증법은 인간의 유한한 이성이 절대 이성에로 나아가는 진행이기 때문이며, 철학적 의식 (이 의식의 형식이 변증법이다) 이라는 것은 절대 이성이 자신-에로-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겔의 관념론이라는 것은 세계의 다양한 형식과 단계를 이성의 전개 내지 실현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헤겔의 범신론은, 하나의 구성 요소로서가 아니라, 체계의 유기적 특징으로서 나타난다. 그에게서 종교철학은 단순히 부분인 것만은 아니다. 종교철학은 헤겔의 체계의 모든 부분 속에 내재해 있다.
헤겔과 자연과학
헤겔 체계의 몰락 이후 다음과 같은 말들은 상투어가 되었다. 즉, 헤겔은 자연과학이 거둔 긍정적 성과를 올바르게 평가하지 않았고, '경험'을 사변의 정점에서 내려다보고서 멸시했으며, 실제적인 자연 연관 대신에 철저히 자의적으로 구성된 형상을 이끌어내었다고. 그런데 이러한 판단 속에는 참된 것과 참되지 못한 것이 혼동되어 있다. 과학의 성과를 너무 경솔하게 다뤘다는 비난은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헤겔 뿐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의 자연철학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낭만주의자, 바아더, 셸링 및 그의 제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훨씬 더 심했다. 또한 우리는 오늘날의 자연과학의 척도를 갖다 대어 헤겔을 비난해서도 안된다. 정밀한 탐구의 시대는 당시에 이제 막 나타나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은 과학의 성과들은 결코 공동의 소유가 될 수 없었다. 시대적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철학은 당장 명백한 길의 안내를 받을 수 없었다고 봐야한다. 그런 상황에서 헤겔은 자연과학으로부터 내면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헤겔은 처음부터 정신철학자였고, 자연철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정신적 존재의 원근법 이외의 방법으로는 결코 자연을 고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철학이 반드시 과학에서부터 동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정밀과학 위에 엄밀하게 기초한 철학의 과제들이 있었다. 라이프니츠, 볼프, 크루지우스와 많은 볼프학도들이 이 과제를 완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의식적으로 뉴턴학도로 생각하고 있던 칸트가 가장 엄밀한 형식으로 이 문제를 완수하였다. 그러나 칸트에게서 그 방법의 출발점은 수학적 정밀성에 제한되어 있었는데, 이 방법의 한계가 드러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판단력 비판이 이 한계를 뚜렷이 드러냈고, 또 비판적으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또한 셸링의 자연철학이 여기에서 출발하였으며, 셸링의 자연철학은, 비록 지나치게 다룬 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남은 수많은 문제들마저 매우 정확하게 알아맞히고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 정밀한 탐구 일반은 그 한계를 갖고 있고, 이 정밀 탐구가 접근하지 못하는 무수한 현상들의 내면적 본질이 존재한다. 이러한 가운데 낭만주의자들의 공상 가득찬 착상들 속에는 자연의 어떤 측면에 대한 진정한 지식의 핵심이 숨겨져 있다. (난 잘 모르겠음) 그리고 이 핵심에 다가가는 와중에 끝없이 생기는 복잡한 문제들 – 특히 유기체의 문제들 – 에서 우리들에게는 다시 감수성이 서서히 떠오르게 된다. 헤겔에게서도 역시 이와 같은 통찰력을 어느 정도로 찾을 수 있는지 하는 것은 의문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통찰력을 무선택적으로, 때로는 매우 임의적인 그의 규정들 속에서 인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헤겔과 역사학
무엇보다 헤겔 자신은 자기 이전의 어떠한 체계적 철학자도 도달하지 못한 역사 탐구자 (물론 철학사에 있어서만) 이다. 헤겔은 고대의 사상가들을 자기의 체계를 정립하기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재료로만 조명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그의 연구를 그렇게 해석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헤겔은 역사적 진행 그 자체에 대해서 완전히 독자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관심은 그 이후의 사람들이 가졌던 관심 – 합법적인 것만을 설명하고자 하는 관심, 즉 사실의 단순한 확정을 지향하는 그런 관심 – 이 아니다. 헤겔에게는 사실의 단순한 확정이 아닌 사실의 의미, 사실의 철학적 의의 및 영원한 가치를 묻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물음은 개별적인 현상안에서는 결코 그 해답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헤겔은 역사상의 철학 문제의 전개, 제 명제와 체계의 대립, 그리고 계기하는 이것들의 법칙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가 여기서 하나하나 올바로 관찰하고, 정당하게 해석하여 결합하였는지는 그 자체가 의문이다. 물론 그는 일면 사실적인 것을 충분히 개관하지도 않은 채, 그것을 너무 지나치게 해석하고, 다른 뜻으로 읽어 내며, 너무도 주저함이 없이 결합시켜 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그는 자기 이후의 철학사들에게 대개 결여돼 있는 것, 즉 사실적으로 형상화시켜 놓은 개념적 파악, 그리고 사상이 지니고 있는 본래적인 초시간성 및 이 사상의 내면적 논리에 대해 이에 꼭 맞는 날카로운 눈매를 소유하고 있었다. 헤겔에 있어 역사적 사실의 연관은 보다 차원 높은 이해력 속에서 밝혀진 것이며, 다시 말해, 이것은 '개념 파악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헤겔은 개념적으로 파악함에 있어서 그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개념들을 넘어서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이 넘어섬은 개념들을 다른 용어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개념들이 등장하게 되는 연관으로부터 그 의미를 비로소 드러나게 하는 방식이라고 봐야 한다. (푸코가 역사를 읽는 방식, 즉 에피스테메에 의거한 역사 해석과 유사한 측면이라고 봐야 하나?) 그의 고대철학사에는 이런 것들에 대한 예가 풍부하다. 사실들의 기록을 통해서는 어떠한 철학사도, 그리고 도대체 어떠한 정신사도 발생하지 않는다. "철학의 역사"는 여전히 미래의 과제이며, 뿐만아니라 이에 대해서는 전통에서 벗어난 어떤 새로운 취급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길 위로 이미 우리들을 훨씬 앞서 간 사람이 바로 헤겔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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