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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사적인 정리

[스크랩] 강남 도심 관광 ‘트롤리버스’ 달린다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13. 12. 13.

 

강남 도심 관광 '트롤리버스' 달린다

"이곳은 신사동 가로수길입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줄 선물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12일부터 운영된 서울 강남시티투어 전용 트롤리버스에 올라탔더니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국어를 포함해 영어·중국어·일본어 4개 언어의 다국어 청취가 가능했다. 태블릿PC를 활용한 주문자제작방식(VOD) 시스템이 16개 좌석마다 설치돼 활용도가 높았다.

서울 강남구는 트롤리버스를 23일까지는 호텔이나 여행사 관계자, 지역주민 대표 등을 대상으로 운영하며 24일부터 유료 운행한다고 이날 밝혔다.

트롤리버스는 전차 모양의 관광용 버스로, 대당 2억4000만원을 투입해 강남시티투어 운영사인 스마트로와 6개월에 걸쳐 자체 개발했다. 기존 버스를 골격만 제외하고 해체해 다시 만들었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벽은 융 등으로 꾸몄다.

다양한 편의시설은 트롤리버스의 가장 큰 특징이다. VOD 시스템 외에도 20개국 자국 통화 결제 서비스(DCC)가 구축돼 국내외 신용카드 29개와 후불 교통카드 외에도 달러·엔·위안화로도 요금을 낼 수 있다. 신용카드 결제 영수증에는 당일 환율에 따라 요금이 자국 통화로 표시된다.

교통약자를 위한 탑승 보조 발판도 설치됐다. 좌석 간 간격이 1m로, 여행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버스 뒤편에는 입석 형태의 널찍한 공간이 마련돼 창문 너머 서울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출처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12/12/20131212006592.html?OutUrl=naver

 

재작년에 중국에 여행갔을 때의 경험이다.

중국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사방에 서양인을 모델로 한 광고물들이 붙어 있다. 나는 주로 시골 동네들을 위주로 돌아다녔는데, 인구 수도 적고 개발도 안 돼 있는 그 허름한 동네의 버스정류장에, 금발 머리를 하고 있는 서양 미녀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미녀 앞에는 오늘 아침 머리를 감지 않고 나온 듯한, 수염도 깎지 않은 중국인 남성이 담배를 물고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묘한 열등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내 자신이 열등감을 느꼈다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에 대해 느꼈다는 것이다. 내가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그런 기분을 느꼈다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니, 불쾌했다. 나 따위가 뭐라고 중국인을 열등하다고 보는가? 아마도 분명 나의 무의식 속에 나는 중국인들을 한국인 보다 미개한 민족이라고, 이상한 관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싫다)

나는 그 광고판과 중국의 현실이 대조되는 것을 보며, 어딘가 어색하고, 지질하고, 못나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저 서양 미녀의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바라고, 그것에 동질화되기를 바라는 욕망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어딘가 불편했다. 어쨌든 나는 그럭저럭 여행을 마치고 (물론 굉장히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그 시점에 굉장히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인천 공항에서 공항 철도를 탔는데, 이른 아침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또 그런 이유로 나는 아직까지 그 어떤 한국인과도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철 좌석에 앉아 집을 향하고 있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이 아직도 중국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모두들 알겠지만, 한국인과 중국인은 생각보다 엄청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앞에 앉아 있는 저 남자,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저 남자의 외양이 지독히도 중국인 스러워 보였던 것이다. 난 사실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도 중국인의 외양은 어딘가 한국인보다 후지고, 멋대가리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보니, 아직도 내가 중국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두 민족의 외양이 너무나도 비슷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자의 오른쪽 위로, 작은 광고판 (전철 문 옆에 붙어 있는 그 작은 광고판) 하나가 보였는데, 그곳에, 중국 버스 정류장에서 보았던 것만 같은, 화려한 금발 미녀가 새겨져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그 중국의 정류장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그대로 다시 재현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그 동일한 열등감을 나의 민족, 내가 속해 있는 이 민족에 대해 느낀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 순간에 비로소 내가 속한 이 민족의 위상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 순간, 그 전철 안에 타고 있던 바로 그 순간, 나는 한국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닌, 그저 외부인의 시각으로 한국인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위의 뉴스를 접했을 때도 어딘가 유사한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다. 버스 디자인을 저런 식으로 했다고 꼭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건 아니다. 사실 저걸 왜 비판해야 하는지도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이건 논리의 문제가 아닌거다. 저기에 도덕성을 끼워넣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저기서 어떤 경각심이나 교훈거리 같은걸 끄집어내기도 애매하다. 그냥 단순히 쪽팔린거다. 자기 자신일 수 없고, 항상 다른 무엇이어야만 하는 나, 그리고 그 내가 속해 있는 이 무리. 저 버스의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이고, 내 어머니의 모습이고, 내 아버지의 모습이고, 내 선조들의 모습이며,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어느 민족이든 조금씩 저런 면모들은 가지고 있다. 미국 사회 내에서 유럽인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는 상류층 취급을 받는다. 미국인들은 유럽의 습관과 취향을 따라하고자 한다. 반대로 유럽은 강대국 미국의 경향을 본받으려 한다. 이놈은 저놈이 되고자 하고 저놈은 이놈이 되고자 하는게 이리저리 얽히고 섥혀있다. 전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힘들다. 그렇지만, 어쨌든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하지만, 이 기사에 대해 나타나는 다양한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것은 곧 우리 한국인이 비교적 주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영은 아니겠는가 하고 자위하기도 했다. 최소한 코쟁이들의 전차를 본 딴 버스가 나타났을 때, 그게 이상하지 않다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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