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도착하다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98454&cid=4363&categoryId=4363
여행자는 도착치에 처음 갓 도착했을 때 가장 방황하게 되는 것 같다.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한 내가 그랬다. "그래. 이제 독일에 도착했다. 근데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독일의 대중교통에 대해서도 모르고, 베를린이 대략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행 전에 글로 배우긴 했다. 독일에는 여섯 가지 종류의 기차와 버스가 있으며, 티켓의 종류는 일곱 가지 정도가 되고 가격은 각각 어떠하며,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차로 20분 정도 걸린단다. 그래 그만큼은 나도 안다. 근데 지금 문제는 내가 이 공항의 출구조차 찾지 못하겠다는 거다!!!
책에서 보기로, 독일의 공중화장실은 대부분 유료이고, 심지어 레스토랑의 화장실에서도 돈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은 공항에서 내리자 마자 화장실에서 몸 속의 잔여 수분을 쪽 빼고 나왔다. 다행히 공항의 화장실에서는 돈을 받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는 곧장 인포메이션 센터로 향했다. 우선은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거기서부터 일정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제 숙소가 (지도를 보여주며) 여기인데요, 여기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아줌마 직원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는 생각보다 영어를 잘 하지 못했다. 그녀는 단어 하나 하나를 내뱉으며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직원은 베를린 관광팜플렛을 꺼내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여주더니 요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나서 Zoologischer Garten 역 (베를린 동물원 역)에서 내린뒤, U-bahn (우반 ; 전철)을 타고 Hackescher Markt역 (하케셰 마르크트 역)으로 가란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Day ticket을 끊었다. 약 6유로 70센트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이 티켓은 대체 어떻게 이용하라는 거지? 버스에 타자 마자 버스 기사에게 묻는다. "이거 어떻게 써야 되는 거죠?" 버스 기사는 엄지로 자기 뒷편의 기기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버스카드 찍는 기계와 비슷하게 생겼다. 거기 보니까 티켓을 집어넣을 수 있게 생겼다. 티켓을 집어넣으니 철컥 하고 도장 같은 것이 찍힌다. 꺼내 보니 오늘의 날짜와 현재 시간이 적혀 있다. "아, 이런 식으로 사용하면 되는 것이군!"
그 이후로 나는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탈 때마다 이 티켓을 기기 안으로 집어넣었다. 근데 처음 도장이 찍힌 자리 위에 계속해서 덧붙여서 도장이 찍히다 보니 나중에는 날짜를 알아볼 수 없게 이 날짜 저 날짜가 뒤죽박죽 찍혀져 버리게 되었다. 내가 제대로 쓰고 있는게 맞는지 슬슬 의심이 되기 시작했으나,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길래 그냥 계속 찍으면서 탔다. 하지만 셋 째 날이 되어서야 나는 이 티켓의 제대로 된 이용방법을 알게 되었다. 버스를 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에 타면서 이 티켓을 기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아하! 그제서야 나는 제대로 된 이용 방법을 알게 되었다. 티켓 사용을 시작하는 순간 한 번 도장을 찍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기사에게 보여주면서 이용하는 것이군! 그렇게 나는 총 열흘의 여행 일정 중 셋 째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의 첫인상
버스를 타고 동물원 역으로 향하는 중 창 밖으로 베를린 시내의 모습이 보였다. 베를린은 정말이지 칙칙한 도시다. 일단 공기 색깔 부터가 칙칙하다. 지금이 초 봄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언제나 비가 내릴 것 같은 우중충한 하늘에, 햇볕은 구름에 가려져 있으며, 기온은 비교적 낮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지어 사람들의 옷차림도 그렇다. 나는 약간 채도가 높은 파란색의 바람막이 자켓을 입고 있었는데, 이 색깔이 이 동네에서는 너무 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본 베를린 시민의 대부분은 검은색 아니면 회색 빛깔의 옷을 입고 있었다. 젊은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초록색이나 노란색, 혹은 빨간색 같은 색깔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심지어 베이지 색도 거의 보지 못했다. 바지는 거의 대부분이 청바지를 입고 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옷을 참 잘 입는 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독일 땅에서만 나는 묘한 냄새 같은 것이 있다. 외국으로 여행을 떠날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모든 나라들은 저마다 자신들 만의 냄새 같은 것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인도를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인도 땅에서는 어떤 곰팡이 냄새 비슷한 것이 풍긴다. 얼핏 향신료의 냄새 같기도 하다. 굳이 묘사하자면, 돈 없는 대학생이 비오는 날 반지하 원룸에서 인도산 향신료를 갖고 음식을 만들고 있을 때 나는 냄새 같다고나 할까? 독일의 냄새는 얼핏 샴푸 냄새 같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파슬리 같은 향신료 냄새 같기도 하다. 이후로 독일의 어떤 지역을 가든 비슷한 냄새를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식을 먹을 때도, 간혹 어떤 음식의 경우 비슷한 향을 풍겼던 것 같다. '독일의 냄새'의 중심에는 분명 특정한 향신료가 놓여있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동물원 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 처음 독일 버스를 타 본 이 동양인은 과연 자기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그는 버스 안의 유일한 동양인이다. 그는 살짝 독일인들의 표정 구조를 살핀다. 한국인들처럼, 이들도 거의 웃지 않는다.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이들의 표정은 그야 말로 영혼 없는 표정이다. 그의 맞은 편에는 한 멀대 같은 독일 청년이 앉아 있다. 그 청년은 모자를 쓰고 있는데, 머리카락도 금발이고 심지어 눈썹도 금발이다. 피부는 양피지 같이 하얀 것이 꼭 양서류 새끼의 피부를 보는 것만 같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처음 지구에 씨를 뿌렸던 외계 종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물어보고 싶지만, 선뜻 물어보기가 겁난다. 내가 영어로 물어봤는데 못알아 들으면 어쩌지? 자기가 못알아듣는 말을 한다고 화를 내면 어떡하나? 프로메테우스의 외계인처럼 갑자기 화를 내면서 내 목을 뽑아버리는 거 아닐까?
"저... 그... 제가 지금 동물원 역으로 가야 하는데, 어디 쯤에서 내리면 되는 건가요?"
"아, 이 버스 제대로 타신 것 맞아요. 지도 갖고 계세요?"
프로메테우스 청년은 친절하게 지도를 보면서 이 버스는 지금 이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으며, 몇 블록을 더 이동한 뒤 하차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제야 이 청년이 한 명의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동물원 역에 내린 나는 지하철을 타고 하케셰 마르크트 역으로 향했다. 베를린의 지하철은 지저분하고 낙후됐다. 여기저기 낙서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어딘가 꼬질꼬질한 느낌을 풍긴다. 한국의 지하철은 참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여나 역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차내 방송 내용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래도 독일어의 발음 구조를 공부해 온 것이 다행이었다. 곧이어 나는 하케셰 마르크트 역에 도착했고, 하차하기 위해 객차의 문 앞에 섰다. 그런데 내가 서 있는 부분의 문만 빼고 나머지 옆에 있는 문들만 열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급 당황하여 얼른 뛰어서 옆의 문으로 내렸다. 뭐지? 이놈의 전철은 외국인 내국인도 구별하나? 왜 내 문만 안열어주는 걸까?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의 지하철은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리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역에 도착하면, 승객이 버튼을 눌러야 하고, 버튼을 누른 쪽 문만 열리는 것이다.
하케셰 마르크트 역에 도착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Berlin_-_Bierg%C3%A4rten_Hackescher_Markt_%2B_S-Bahnhof.jpg
역에 도착한 나는 또다시 방황하기 시작했다. 방향감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디가 북쪽이고 어디가 남쪽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데이터 무제한 로밍을 신청해 놓고 온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구글지도에 미리 찍어뒀던 호텔의 위치를 찾아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또 혹시나 몰라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숙소 외관의 사진을 폰에 담아왔는데,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갔던 길을 되돌아오고, 한참을 헤매다가 드디어 사진으로만 보던 그 건물을 발견했다. 나는 즉시 건물의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 건물은 전혀 숙소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일반 거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같았다. 심지어 건물의 문은 잠겨 있었다... 어리둥절 하고 있는 사이 어떤 남자가 건물에서 밖으로 나오길래 그 틈을 타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왠 배낭을 짊어 맨 동양인이 건물로 휘리릭 들어오니 당황한 눈치였다. 건물 밖으로 나가서도 한참을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흡사 아파트 단지에 불법 전단지를 붙이러 온 알바생을 노려보는 경비 아저씨의 눈빛, 그것과 같았다. 눈길을 피해 재빨리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건물 안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엘리베이터 두개와 계단, 고작 그게 다였다. 로비도 없고, 데스크도 없다. 난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미 시간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베를린에 도착한지 벌 써 4시간 남짓이 지나고 있었다. 숙소를 찾는 데만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여행 내내 이런 패턴을 반복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내 여행기의 절반은 숙소를 찾는 모험 이야기로 가득차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침 거주인으로 보이는 소년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오길래 그에게 내가 찾고 있는 숙소의 주소를 보여주며, 내가 제대로 온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소년은 자기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며 당황해 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영어 못해도 괜찮으니 이 주소를 잘 봐달라 하면서 검지로 주소와 이 건물을 번갈아 가리키며 내가 지금 '여기'에 와 있는거냐고 질문했다. 소년은 주소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이윽고 뭔가 알아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내 눈을 보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Nein!"
그래... 나도 내가 잘못 왔다는 건 알아 인마... 나는 다시 손짓 발짓으로 그러면 도대체 이 주소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거냐고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년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이는 것이었다. 야 이 자식아... 그런데 그 때 어떤 노부인이 건물에서 나가는 것이 보였고, 소년은 노부인을 붙잡아 세우고는 주소를 보여주며 독일어로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노인이 한참이나 주소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나에게 따라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노인은 아마도 이 숙소가 저 건물 뒤편 쯤에 위치해 있는 것 같으며, 쭉 나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소년과 노부인을 보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내 위치가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숙소 예약 확인서를 꺼내서 찬찬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그냥 지나쳐버렸던, 아주 중요한 정보를 발견하고 말았다. 체크인은 세시부터 건물 옆의 키오스크에서 시작되며, 그 이전에는 체크인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제기랄. 세시 이전에는 직원이 아예 출근을 안하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건물은 원래 거주인들을 위한 아파트로 사용되는데, 남는 방이 있으면 그 방을 여행객들에게 일시적으로 대여해주는 모양이었다. 독일에는 이런 식의 아파트형 숙소가 많다고 한다. 결국 나는 세시까지 무거운 가방을 들고 베를린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맑스와 엥겔스 동상, 그리고 베를린 성당
일단은 큰 길가로 나가보기로 했다. 조금만 나아가보니 강이 보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슈프레 강이란다. 강은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거의 한강 수준 혹은 한강보다 약간 더 더러운 수준이었다. 강 옆가에는 여기저기 노천 까페가 줄지어 있었다. 날씨가 쌀쌀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슈프레 강의 바로 옆으로 아주 오래된 돔형의 건물 하나가 보였다. 혹시 저게 사진으로만 보던 베를린 대성당인가? 하고 지도를 펼쳐봤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지도상의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 다시 조용히 지도를 덮었다. 무슨 건물인지 알아보려면 직접 저기에 가보는 수 밖에. 다리를 건너 건물로 향하고 있는데 저어기 옆쪽에 커다란 공원이 하나 보인다. 그리고 그 공원에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동상이 보인다. 서...설마...!!!
그렇다. 맑스와 엥겔스 동상이었다. 김덕영 교수의 칼럼에서 이 동상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맑스라는 인물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는 것 같다. 철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맑스가 익숙할지 몰라도, 일반인들에게 맑스는 '아 그 공산주의를 만든 사람?'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아직 <자본> 원전을 다 읽지는 못했는데, 가끔 내용을 참조하기 위해 책을 펴들고 있으면 친구들이 와서 장난 삼아 말하곤 한다. "야 어디서 이런 불온 서적을 읽고 앉아있냐? ㅋㅋ" 그런데 여기 독일은 구석진 자리도 아니고 도시 한복판에 맑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기분이 묘하다. 지난 99년 BBC에서 지난 1000년 동안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누군지 설문조사를 했는데 1위가 맑스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일인은 맑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에게 맑스는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대 사상가로 인식되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공산주의의 시초 정도로 이해되고 있을까? 그들은 맑스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있을까? 아님 수치스러워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거리를 따라 조금 더 나아가니 드디어 건물의 모습이 정면에 보이기 시작한다. 예상했던 대로 이 건물은 베를린 대성당이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건물 앞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데 동양인 관광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대부분 인접 유럽 국가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거기서 동양인은 거의 나 혼자였던 것 같다.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내 모습이 다루기 쉬워보였는지 아랍계통 여자 한명이 다가와 도네이션을 해달라며 종이를 내민다. 노 땡큐 하고 지나가려는 데 자꾸만 따라온다. 나인 당케를 외치며 몇 번을 뿌리치자 여자는 투덜투덜 거리며 돌아간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분명 나를 욕하고 있었을 것이다.
제단의 모습
베를린 대성당은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하다. 약 7269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오르간이라고 한다. 오늘 오르간 연주를 듣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고요했다. 관광객들이 자그맣게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성당은 그리 크지 않았다. 생각보다 그리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장식이 아름답게 된 성당이군!" 이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 성당은 원래 카톨릭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개신교의 예배를 위해 쓰인다고 한다. 1층에는 제단이 있고, 신자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한 의자가 놓여 있다. 2층에는 그 유명한 파이프 오르간이 놓여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2층은 관광객이 올라갈 수 없게 돼 있고, 그 맞은 편 2층으로는 올라갈 수 있게 돼 있었다. 위에서 바라보면 제단이 좀 더 예뻐보이려나 하는 생각에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내가 2층으로 오르자 마자 누군가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예배를 앞두고 연습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오... 역시 성당에서는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를 해야 소리가 좀 사는 것 같다. 음악이 울려퍼지는 것이 꽤나 멋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느끼기에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소리 자체가 아름다운 건 아닌 것 같다. 혹자는 무슨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느니 아름다운 선율이 느껴진다느니 하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오르간 자체가 내뿜는 소리의 크기가 크고, 성당의 구조상 소리가 잘 울리기 때문에 웅장한 느낌을 선사함은 분명했다. 어쨌든 저런 연주를 들으며 성가를 부르면 분위기가 참 잘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의 옥상에 가면 베를린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다길래 올라가 봤다. 그런데 도시를 내려다봐도 뭐 어디가 어디고 어떤 건물이 뭔지 당췌 알 수 가 없으니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옥상에서도 방향감각을 못찾는 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날씨까지 우중충하고 추워서 그저 빨리 내려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결국 옥상에서는 사진도 한장 찍지 않고 내려왔다.
구국립미술관
성당을 나와서 이번에는 구국립미술관으로 향했다. (http://www.smb.museum/museen-und-einrichtungen/alte-nationalgalerie/home.html)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뒤러와 브뢰헬, 그리고 클림트와 실레의 그림을 보고 오는 것이었는데, 구국립미술관에 뒤러의 그림이 다수 걸려 있다길래 꼭 방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뒤러의 그림을 찾기 위해 미술관의 그림 하나 하나를 천천히 뜯어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뒤러의 그림은 없었다. 다만 예기치 않게 익숙한 몇 개의 작품들만을 발견했을 뿐이다.
구국립미술관
그 유명한 헤겔의 초상화가 이 곳에 걸려 있었다. 그림을 볼 때 작가의 이름이 익숙치 않아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나중에 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Jakob Schlesinger 라는 사람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그림이 굉장히 작았고, 그림의 표현방식도 생각보다 생생하지 않았다. 붓터치가 두껍고 흐렸다. 또 생각보다 색채가 밝아서 내가 예상한 헤겔의 얼굴과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래서 그닥 큰 감동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다음 발견한 익숙한 작품은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음의 섬> 이다. 간혹 인터넷에서 종종 보게 됐던 작품인데, 이 그림이 여기에 걸려있을 줄이야. 그림의 분위기가 꼭 벡진스키의 그림 같다. 난 이런 풍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내가 어릴 적 좋아했던 <네버엔딩 스토리> 나 <리턴 투 오즈>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림들이다. 결국 끝까지 뒤러의 작품을 발견하지 못한 나는 미술관을 나가는 길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직원에게 물어본다. 겉모습만 봐서는 이 미술관에 걸린 작품들에 대해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 같다.
"이 미술관에 뒤러 그림이 있다고 들었는데,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죠?"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어떤 그림을 말씀하시는거죠?"
"이를테면 이런 그림들이요"
내가 폰에 담긴 뒤러의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제 생각엔 아마도 여기가 아니라 게멜데 미술관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독일에서 미술관 탐방을 할 때 가장 실망스러운 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는 미술관이 워낙 많아서 한 작가의 작품이라 할 지라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빈에서 뒤러가 그린 베네치아 여인의 그림의 경우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고, 토끼 그림의 경우 알베르티나 미술관이라는 곳에 있다. 내가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실레의 그림들만 하더라도 3개 이상의 미술관에 걸쳐서 전시돼 있기 때문에 내가 보고 싶어하는 특정한 그림이 어떤 미술관에 전시돼 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느꼈던 것은, 그 누구도 자기 미술관에 어떤 작품이 전시돼 있는지 잘 모르더라는 것이다. 미술관 경비를 담당하는 직원도 그렇고, 표를 판매하는 직원도 그렇다. 또 유명한 작품의 경우 간혹 해외 전시를 위해 나가거나 복원 작업을 위해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있는데, 문제는 직원들도 그림들의 행방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는 것이다. 글쎄, 만약 내가 사람을 잘못 골라서 물어본거라면 나도 할 말은 없을 지 모르겠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직원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을 일개 하급 직원들에게 문의를 해서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왜 그들은 나에게 "저에게 물어보시기 보다는 어느 어느 파트에 있는 어떤 분을 찾아가서 여쭤보세요" 라고 말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림의 출처에 대해 질문하는 관람자가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결국 나는 다음에 게멜데 미술관에의 방문을 기약하면서 구 국립미술관을 나섰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어 더 이상 다른 미술관을 방문할 수 없다. 이 동네는 미술관이 또 얼마나 늦게 열고 일찍 닫는지 하루에 미술관 두 군데 가기도 시간이 빠듯한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아침 10시쯤 개장해서 오후 5시나 6시 즘 닫는다. 좀 아침 일찍 9시부터 늦게 7시 까지 열어주면 좋으련만.
'[Verleugnung]의 글 > 사적인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철학도의 독일여행기 ④ : 베를린 – 중앙역, 유대인 박물관 (4/6) (1) | 2014.04.17 |
---|---|
한 철학도의 독일여행기 ③ : 베를린 - 훔볼트 대학교, 홀로코스트 추모비, 브란덴부르크 문 (4/5) (0) | 2014.04.17 |
[불어 일기] Est-ce que vous aimez voyager? (2) | 2014.01.11 |
[불어 일기] Aller au cinéma (0) | 2014.01.10 |
[물질과 기억 독해] 71~79 (0) | 2014.01.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