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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글들/[독일 관념론 정리]

J [독일 관념론] 533~538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14. 3. 20.

그리고 이와 같은 재료와 함께 고찰 방식 또한 변한다. 재료의 변화에 따라 고찰 방식은 때로는 의식의 분석의 형태를, 혹은 역사철학, 인식론, 논리학, 윤리학, 법학, 종교철학의 형태를 띠게 된다. 헤겔은 여기서 의식 혹은 심정의 분석으로부터 아무런 매개도 없이 역사적인 과거 속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번 아무 매개 없이 고유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여기에는 헤겔의 매우 명확한 사상이 기저에 놓여 있다. 우리가 의식이 자기 자신과 행하는 "경험"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 사상은 매우 명백해진다. 그런 경험은 인간의 개별 의식만이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가 자기의 정신적인 삶에 있어서 자기 자신과 함께 행하는 대규모의 경험도 존재한다. 그것은 의식의 역사적, 대우주적 경험이다. 또한 역사는 그 자체 비할 데 없이 거대한 경험의 연쇄이고, 정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사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개인은 역사 속에 사라진다. 그러나 역사는 동일한 주관의 경험인 것이고, 동일한 객관에서, 즉 이 객관의 고유한 본질에서 만들어진다. 주관은 언제나 자기의 실체에 따라서 동일자이다. 주관은 다만 역사적으로 자기의 현상 형식에 있어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그리고 이 현상 형식도 역시 개인적인 주관의 내부에서 차이가 난다. 따라서 의식의 현상학에서는 항상 동일한 의식의 두 가지의 현상 계열, 즉 개인적인 계열과 역사적인 계열이 발견된다. 그런데 이 양자는 동일한 경험의 계열이다.

 

개인과 역사, 이 양자의 관계

역사적 경험은 물론 반드시 개인적 경험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자는 오히려 처음부터 매우 한정된 정신적 수준, 즉 자기 시대의 정신 속으로 성장한다. (J : '속에서'가 아니라 '속으로'인가?) 그런데 여기에서 관계가 변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이 시대정신 속으로의 성장은 이미 형태들을 통과하는 것인데, 이 형태들 그 자체는 결코 개인적으로 각인된 것이 아니고, (적어도 커다란 주된 특징에 있어서는) 만인에게 공통적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형태들은, 실로 단축되고 압축된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인식할 수 있는 역사적 과정의 반복이다 .

개별적인 개인의 "교양"의 어떤 요소들은 전적으로 아래로부터 새로이 시작되고 또 발전되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들은 각기 세계와 함께, 또 자기 자신과 함께 비로소 정도를 서서히 찾아낸다. 여기서 개인이 통과하는 형태들은 이 개인에게 물론 결코 그 자체로서 의식되어 있지 않다. 학문이 비로소 이 형태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형태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발전에 있어서 시간상으로 분리된 단계들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의식 속에는 내적 및 필연적 일관성을 지닌 단계 계열이 있는데, 이 계열은 공존하는 계열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계열은 영적으로 이른 것과 늦은 것의 관계를 자신 속에 갖고 있고, 지속적으로 자신 속에 보존하고 있다. (J : 즉 이전 단계가 단순히 없어진 게 아니라 지양된 상태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뜻인 듯) 이 계열은 바로 "자연적 의식의 길"이요, 또 형태들의 계열로서 자연적 의식의 구조 또는 성층이다.

우리는 동일한 사정을 정신의 역사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정신의 역사 속에서도 과거는 단적으로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다. 과거는 후속되는 것 속에 보존되어 있다. 여기서도 역시 전체는 단계 구조로서 서술된다. "의식이 이 길 위에서 통과하는 그의 형태들의 계열은 의식 자체의 교양이 학문에 이르는 자세한 역사이다" 헤겔은 이렇게 결코 시간적인 것이 아닌 순수한 내면적 단계를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는 시간적인 의미로도 타당하다. 왜냐하면 바로 "학문에 이르는 의식의 교양"이 확실하게 정신의 역사의 단계들에서 재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과 역사의 관계는 현상학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헤겔은 여기서 "특수한 개인들"과 "보편적 개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겔은 여기서 "보편적 개인"의 이름 아래에서 개인들의 공통점을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개인성 일반은 모든 주관에게 공통적인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어떤 보편적인 것이다. 오늘날에 사용하는 의미의 "개인적"이라는 낱말은 개별적 개인의 특수성이다. 그런데 이 특수성은 저 보편성에 의해서 침해를 받지 않는다.

헤겔의 본래적 관심은 원래 "보편적 개인"에 향해 있다. 헤겔에 있어 특수한 개인은, 유한화로서, 그리고 그 속에 "'하나의' 규정성이 지배하고 있고, 다른 규정성은 말살된 모습으로만 현전하는", "불완전한 정신"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현상학의 본래적 대상은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보편적 개인"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보편적 개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알고 있다. 이 보편적 개인은 역사의 기체이고, 동시에 우리들의 의식의 보편자이다. 우리는 이 보편자로 인해 우리 자신 속에서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결론을 말하자면, 두 가지 방식의 경험 (J :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경험) 속에 있는 의식의 형태들의 단계 계열은 같은 것이며, 우리들에게는 이중적 형식으로 주어지지만, 사실상으로 하나요, 동일한 것이다.

이 '동일하다'는 점은, 우리가 '위로 상승하는 단계들의 관계'를 주시할 때 더 구체적으로 이해된다. "어떤 다른 정신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는 정신 속에서는 보다 낮은 구체적 정재(본질적 존재에 대립하는 구체적ㆍ개별적 존재)는 눈에 띄지 않는 계기로 가라앉아 있다. 이전에 사태 자체였던 것은 바로 흔적으로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은 새로운 형태 속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폐기된 것이 아니고, 다만 덮여 쌓여 있을 뿐이다. "이 과거(사라져 버림)가 개인의 의식을 통과하는 방식은, 마치 보다 높은 학문에 착수하는 사람이 그가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던 예비 지식을 관통하는 것과 같다" (J : 즉 고2때 수I을 마친 고3이 수II를 공부하면서 수I에서 배웠던 것을 되돌아보는 것과 같다는 뜻인 듯) "그리하여 우리들은, 이전 시대의 어른들이 성숙한 정신으로 임했던 지식을 대하면서, 이제 그것이 소년 시절의 지식, 연습, 심지어 놀이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정재 (본질적 존재에 대립하는 구체적ㆍ개별적 존재)는 이미 보편적 정신이 획득한 소유물이 된 것이다."

이처럼 현상 형식의 총체성을 중시하는 헤겔이 정신의 역사와 작용 분석을 필요에 따라서 서로 교대시키는 것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사태, 즉 "정신" (=광의의 모든 영적 존재) 의 본질은 바로 무진장한 것이다. 이 정신의 본질을 파악하고 정당하게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엄청난 재료 – 이 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인간에게 포착되건 간에 – 를 포착하고자 해야 한다.

정신 현상학은 근본적으로는 철학의 하나의 영원한 과제이다. 헤겔이 정신 현상학에 착수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다. 다만 최초로 분명하게 윤곽을 잡았을 뿐이다. 우리들이 오늘날 "현상학"이라고 부르는 기술적인 작용 분석도 역시 본질적으로는 정신 현상학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길들 중의 어느 하나의 길이 언젠가 대상을 모두 검토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정신적인 것의 본질은 생동적인 것이고, 언제나 계속 산출된 것이다. "그리고 너가 어떠한 길을 걷는다 할지라도, 너는 그 길의 끝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 헤라클레이토스도 이렇게 기술하지 않았던가. 헤겔 역시 많은 길 중에서 하나의 길만을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도 역시 그렇게 함으로써 정신의 종말에 이른 것이 아니고, 자기 파악의 종말에 이르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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