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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성가와 성화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7. 22. 15:16

 

냉담자로 산 지 오래지만,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성가가 있다. <어서 가 경배하세>라는 노래다. 예수가 탄생했다는 구절이 흐른 뒤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어서 가 경배하세'라는 가사가 이어지는 구조다. 왜인지 모르지만 어릴 적 어린이 미사 시간에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오묘한 감동을 느끼곤 했다.

 

20대 때에는 오르세 박물관인가에 방문했다가 어떤 그림을 보게 됐는데, 어릴 적 그 느낌과 굉장히 비슷한 것이 느껴져서 상당히 놀랐다. 외젠 뷔르낭이 그린 <무덤으로 향하고 있는 베드로와 요한>이다. 두 사도는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무덤으로 향한다. 그림은 그 찰나의 기쁨과 놀라움의 감정을 매우 잘 담아내고 있다.

 

부활이라는 것은 곧 두 번째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니, 두 작품이 그리는 주제가 유사하다는 것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예수의 탄생이나 부활을 그린 다른 작품들에서는 그런 감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작품들은 동일하게 '경배'와 '기쁨'의 요소를 담고 있었지만, 내게는 그런 것이 같은 결의 감정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어서 가 경배하세'의 뒷부분이 아닌 앞부분에서 무언가를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를 움직인 건 '경배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서 가자'는 역동의 측면이었던 것이다. 뷔르낭의 그림이 내게 호소력을 가졌던 것도 두 사람의 표정과 몸짓, 살짝 기울어진 몸의 기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그것들은 경배라는 감정을 정적으로 기술하는 대신, 그러한 경배가 움트려 하는 어떤 순간속도적인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그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림 속 요한은 올랜도 블룸을 많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