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leugnung]의 글/별 걸 다 리뷰

서평 : <프로이트 I - 정신의 지도를 그리다>, 피터 게이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10. 16. 21:29

세상에는 굉장히 매끄럽고 우아하게 작동하지만, 그것의 배후 즉 작동방식이나 기원이 잘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가령 우리는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고급스러운 스테이크를 먹으면서도 사실은 그 고기가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알려

고 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런 일은 사상사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특정 학파의 사상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정교해지고, 고급스러워지고, 또 권위도 더 생기는 법이지만, 실제 그것이 탄생했던 맥락과 배경은 점차 잊혀지기 마련이다.

 

<프로이트 I - 정신의 지도를 그리다>는 프로이트 사상의 배후를 그린 책이다. 저자인 피터 게이는 사상사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대학교수. 그런데 후에 분석가 훈련까지 받았다고 한다. 사상 자체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까지 탑재돼있으니 그 글에는 얼마나 공신력이 있겠는가.

 

프로이트를 떠올리면 항상 드는 질문이 있다. 그는 왜 하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주제에 빠지게 됐던 걸까? 그는 왜 색광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성과 섹스에, 그리고 동성애라는 주제 같은 것에 심취했던 것일까. 그는 왜 그많은 정신병리 중 신경증이라는 범주에 그토록 매료됐던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사실 교과서에도 나와 있다. 당시의 기독교적이고 억압적인 시대문화가 신경증이라는 시대적 질환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억압의 배경에서 성과 섹스가 탐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억압의 기원을 쫓아내려가다보면 성이 다른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원형으로 발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피터 게이는 이런 사상으로서의 사상의 계보를 파헤치는 방향을 택하기보다, 프로이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상사를 재조직해나간다. (물론 아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그는 오이디푸스라는 구성물이 사실은 프로이트의 자기분석 안에서, 즉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던 그의 어머니와 그 사이에 존재했던 모호한 성적 긴장의 과거력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법관 슈레버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투사(projection)라는 개념을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부분은 특히나 압권이다. 프로이트는 편집증(혹은 피해망상)에 시달리던 법관 슈레버의 사례를 충분히 연구한 뒤 이렇게 결론 내린다. "남자의 편집증에서 갈등의 핵심은 남자를 사랑한다는 동성애적인 소망 환상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정신의학 교과서에 보면 피해망상의 정신분석학적인 원리가 나오는데, 읽을 때마다 납득이 안 가던 부분이 있다. 피해망상은 투사에서 생기는데, 거기서 투사되는 것이 동성애적 함축을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왜? 교과서에서는 만족스러운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나름의 역사적 맥락은 있다. 저자는 프로이트와 그의 학문적 동반자들 사이에 있었던 미묘한 동성애의 역사들을 상세히 다룬다. 특히 플리스(Fliess)와의 관계는 독특한데, 프로이트는 그에게 단순한 친구나 동반자 이상의 감정을 경험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프로이트는 후기에 그 스스로도 그것이 '동성애'였다는 것을 시인한다) 그 관계의 양상은 상당히 독특한 것이어서 프로이트의 일생에 걸쳐 대상을 바꾸며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가령 융(Jung)과의 관계 같은 것이 그렇다.

 

신경증도 마찬가지다. 프로이트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을 분석해놓은 것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나 많은 신경증자들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령 도스토예프스키를 분석한 그의 논문을 보면, 신경과민에 가끔 기절에 발작까지 하는 그의 모습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우아한 모습과 상당히 달라 좀 놀랍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여기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필자는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 프로이트가 그렇게 기절을 많이 했던 사람인지 몰랐다. 그것은 특히 그가 감정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형성했던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나타났는데, 실제로 융과 함께 있었을 때는 상당히 여러번 기절을 하거나 발작을 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런 자기 경험이 신경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지 않았을까.

 

이외에도 프로이트가 왜 그토록 <토템과 터부>라는 연구 주제에 몰두했는지 (그는 융과의 학문적 경쟁에서 자신의 우위를 입증하고 싶었다), 왜 그가 그토록 <늑대인간> 사례에 골몰했는지 (그는 이 사례를 신속하게 발표하면 융이나 아들러와 자신의 이론이 차이난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미묘한 역사적 배경들이 드러나는데, 이런 숨은 역사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는 못 하겠다. 일단 본문 내용만 600여 페이지에 이르는데, 결코 가볍게 며칠 안에 읽을 수 있는 양은 아니다. 사실 다 읽는 데 거의 1주일이 걸렸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도 이럴진대, 초보자라면 더 걸리지 않을지. 게다가 겨우겨우 힘들게 읽고 나서 뿌듯함을 느껴보려 하는 찰나, 이 책이 장장 2권에 걸친 시리즈 중 첫 번째 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했다. 다음 책도 시간 내서 읽을 수 있을까? 일단 보류하는 것으로...

 

여담 : 만약 누군가 이 책의 내용을 짧은 다큐로 만들어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올려준다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