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프로닥숀 2014. 3. 16. 21:23

셸링의 동일철학과 헤겔사상의 차이


셸링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양적등급에 관해서 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등급은 절대자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그렇게 됨으로써 절대자는 지양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절대자 그 자체의 본질 속에는 자기 곁에 어떠한 상대적인 것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적인 것의 다양성을 절대자 그 자체 속으로 받아들어야 한다. 상대적인 것이 절대자 속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으며, 상대적인 것이 절대자 속에 머물면서 어떻게 절대자로부터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이다.

기독교는 실로 절대자를 가장 내면적인 주관성 속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갖고 있었겠지만 그럼으로써 경직화된 세계 너머로 주관성을 전적으로 밀쳐 내버리는 일을 초래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실상 절대자는 이미 상대화되고 만다. 이러한 이분화는 동일성을 강조하는 헤겔의 사상에 있어 지양되어야 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따라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은 동일성 속에 잇는 하나. 지의 참된 우주이고 이것이 철학의 관심사로 정리된다.

 

칸트와 헤겔의 절대자에 대한 입장


절대자는 관계 속에서 파악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관계는 상대인 것이고 포괄자를 상대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자는 자신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 난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신앙철학이 나타난다.

헤겔: 헤겔은 주관성의 반성철학이라는 타개책을 세운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신앙 철학에 대한 준엄한 거부로써,감정으로 퇴각하는 가운데서 이성을 배신하고, 그리하여 이성의 절대성과 동일성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한 조각의 값싼 회의 및 상식에 의한 저러한 통속철학이 재발하고 있음을 본다.

칸트:칸트의 신앙은 이상신앙으로써, 확신의 형식을 띄고 있다. 이 확신의 형식에 대해서는 오성개념의 연역을 이끌어 내었던 제한법칙의 결정적 역할으로, , 자유 그리고 불멸성은 물자체로서 인식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것의 현존재를 확신할 수는 있다고 본다.(이해 불가…)

그러나 동일성 이론의 입장으로 보아서는, 주관과 객관을 분리되어 있고 물자체와 현상은 서로 독립하여 있으면 선천적 인식과 후천적 인식은 자립한 것으로서 서로 대립해 있고 또 서로 제한할 뿐이다.

헤겔의 절대이성의 입장에 선다면 칸트의 철학 속에는 배리가 놓여있다. 칸트철학은 순수 이성이 그 자신을 깨달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을 인정하고자 하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칸트와 헤겔-절대자

 

신앙철학에 대한 피히테의 형식은 다시 칸트의 형식에 더 가까이 있고 실천적인 것의 우위에 관계를 맺고 있다. 자연의 체계속에 속박되어 있는 인간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반항으로 여겨진다. 이원론은 여기서 그 극단적인 한계에 이르러 비판가에게 아무런 작업을 남겨 놓지 않는다. 자아의 현상이면서 마찬가지로 이성의 현상인 세계에 대한 일번적인 평가절하는 헤겔에게는 깊은 죄업으로 서 즉 인간의 배은과 체면손상으로서 나타난다.

칸트 자신은 신의 이념에 관해서 그는 신의 실존에 대한 실천적 신앙을 타당한 것으로 본다. 신앙은 이 때 사실상 이념 이외 그 어떤것도 주어져 잇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신앙이 신을 현실적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실천적으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동일성은 신의 이념과 신의 실재성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고 따라서 신의 이념은 그것이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자의 이념이기 때문에 여타의 이념과 사정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실존에 대한 본딜의 무관심성으로부터 나온 논증은 신의 이념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 존재론적 논증이 의미하는 것을 실행한다

 

절대적 인륜성


 헤겔은 전체는 부분에 선행한다고 본다. 헤겔에 있어서는 적어도 대자 존재자로서가 아닌 개별자의 인륜성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개인적인 의지 그 자체를 규정하는 도덕법칙은 거짓된 법칙이다. 그리하여 절재적 인륜성이 개별자 속에서 개별자로서 표현되는 한, 절대적 인륜성은 부정의 형식 아래에서 정립된다. 즉 그것은 보편적 정신의 가능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