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leugnung]의 글188 말해지지 않은 것이 말해주는 것들 말해지지 않은 것이 말해주는 것들 언어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전달되면서 소통의 기능을 수행할 때 '비언어적 소통'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바디 랭귀지나 표정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것이 항상 인간의 얼굴이나 몸짓을 매개로 등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소통이 사물을 경유해 나타나기도 한다. 운전을 하다보면 깜빡이를 켜지 않았는데도 '웬지 이쪽 차선으로 넘어올 것 같은' 차들을 보게 된다. 운전을 많이 한 사람들은 어떤 감각 같은 게 생겨서, 차의 미세한 태세(posture)를 보기만 해도 그것이 뭔가 이쪽으로 넘어올 것 같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표현이나 소통이라는 것이 무어길래, 우리는 그깟 자동차의 태세만으로도 어떤 메시지를 얻게 되는 것일까. 언어를 넘어.. 2021. 3. 17. 무의식이 말을 하게 하는 법 무의식이 말을 하게 하는 법 정신치료자의 큰 목표 중 하나는 환자가 말하지 못하던 것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즉 '그것(es)'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뇌 안에 있을까? 그러나 치료실 안에서 일대일로 마주 앉아 '그것'에게 말을 걸고자 하는 치료자의 노력은 종종 실패하고 만다. 줄곧 말을 하지 않던 한 소녀가, 며칠 전 처음으로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입원실의 다른 또래들과의 만남에서 비로소 말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의 '그것'은 치료 공간이 아닌, 또래들과의 어울림이라는 맥락 안에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와 그녀 사이에서 작동하지 않던 말하기의 기능이, 그녀와 또래 사이에서는 활발히 작동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그것을 이용해 매우 용이한 방식으로 그.. 2021. 3. 17. 좋아함과 원함 #1. 현대 정신의학에서 핫한 개념들 중 하나가 '좋아함(Liking)'과 '원함(Wanting)'이라는 개념이다. 다분히 철학적인 냄새가 풍기는 개념인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개념적 정교화가 중독의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사람이 알코올을 중단한 뒤 한참 지나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알코올을 좋아(Liking)하지는 않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신체가 그것을 여전히 원하(Wanting)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Liking은 주로 뇌 안의 아편(Opioid)계열 회로와(흔히 말하는 엔돌핀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아편 계열에 속한다), Wanting은 도파민(Dopamine)회로와 관련돼 있다. 이 두 개는 서로 상호작용하긴 하지만.. 2020. 12. 20. 섹슈얼리티와 아버지의 부재 정신분석학에서는 흔히 Father figure라는 말을 쓴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말한다.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던 에서 후안(마허샬라 알리)은 바로 이런 아버지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의 존재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누군가는 “영화 내내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그가 전체 러닝타임의 채 삼분의 일도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영화 속 그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는 자신의 게이 취향을 조금씩 발견해가는 흑인 소년 ‘리틀’의 일생을 그린다. 소년의 엄마는 약물중독에 빠져 그를 돌보지 못한다. 대신 동네의 건달 후안이 그의 정신적 아버지가 되어준다. 리틀은 곧 후안이 사실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마약 판매상.. 2020. 12. 17.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4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