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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사적인 정리

[일기] 2013년 12월 16일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13. 12. 16.

옛날엔 참 일기를 많이 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기 쓰는 게 귀찮아졌다. 아니 귀찮아졌다기 보다는 뭔가 별로 효용성이 없는 행위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거 남겨서 뭐하지? 그 시간에 책 한장이라도 더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일기를 남기고 싶다. 별 내용 없는 쓸데 없는 일기를.

오늘은 모임이 있었다. 형님들과 고기를 먹고 왔다. 여기 있으면서 고기는 참 많이도 먹는 것 같다. 점심에는 닭 백숙을 먹었는데, 저녁에는 소고기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 모임에는 술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어서 술은 별로 안먹는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나면 항상 까페에 가서 수다를 떨다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간다. 12명의 남자가 까페 안에 옹졸하게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모습은 가히 봐줄 만 한 풍경이다.

생각보다 눈이 많이 오지는 않는다. 청송은 눈이 오면 일단 서울 나가는 걸 포기해야 한단다.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야만 고속도로를 탈 수 있는데, 4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산을 넘기 힘들다. 고속버스는 운행을 중단하는데. 차가 없어 고속버스에 의존해야만 하는 이곳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갇혀도 큰 상관은 없다. 사실 요즘은 서울에 자주 올라가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서울 올라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왕복 9시간을 버스 안에서 허비하는 것은 뭔가 아깝다. 게다가 서울에 올라가면 그닥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게 된다. 돈이나 쓰고 오는거다. 그 시간에 나의 집무실에 앉아 책이라도 읽는 게 뭐라도 남는 게 있다. 당분간은 주말에도 이곳을 지킬 예정이다. 이곳이 너무나도 적막해져 도시가 그리워질 때 쯤 한번 나가줘야지. 아, 크리스마스 때는 서울에 올라갈 예정이다. 최소한 24일과 25일은 서울에서 보내고 싶다. 누구와? 물론 딱히 같이 보낼만한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외롭지는 않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만나는 사람이 있긴 했었다. 그런데 매주 서울에 올라가는 게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에 한번 갔다오면 어딘가 내 머리가 이성보다는 감성 쪽으로, 혹은 감각적인 쪽으로 많이 치우쳐져 다시 이성적인 부분으로 돌아오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월요일은 항상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냥, 뭔가 지금 이 시기는 뭔가 더 스스로에게 집중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뭔가를 배분할 때가 아니다. 아직은 뭔가 안정을 찾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불완전하게라도 무조건 성장을 해야 한다. 뭔가를 집어넣고, 뭔가를 쌓아야만 한다. 앞으로 이런 기회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지금만이 기회다. 물론 가끔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도 있다. 누군가와 연애감정을 가져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와 거리를 걷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니면 혼자 홍대에 놀러가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 내가 정신을 되돌리기 위해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어찌 보면 아주 재수없어보이는 방법이긴 하다. '네이버'와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거다. 네이버나 카카오톡에 접속하면 숱한 군상들을 마주할 수 있다. 숱한 젊은이들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그런 것을 대충 느낄 수가 있다. 이를테면 어떤 여성 A는 어제 친구와 멋진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왔는지 맛있게 먹고 온 음식 사진을 카카오톡 스토리에 올려놓는다. 어떤 남성 B는 며칠 전 해외로 여행을 다녀왔는지 여행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올려놓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남김말에 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자신의 감정상태 같은 것을 적어 놓는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그들은 성장하고 있지 않고 분배에 신경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 이들은 지금 뭔가를 즐기고 싶어하는구나. 이들은 지금 어떤 종류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구나. 그리고 그 행복 속에서 이들은 분명, 최소한 지성의 차원에 있어서는 성장하고 있지 않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즉시 내 안에서는 이상하게도 성장을 향한 욕구가 용솟음치게 된다. 이들이 정체되어 있는 동안에 나는 몰래 소리 없이 앞으로앞으로 나아가서 더 우월한 위치를 점하자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여행을 가거나 음식을 먹는 것은 매우 유용한 일이다. 나도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다만 나는 지금 현재는 강박적으로라도 성장을 욕구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조금이라도 나를 채찍질할 수 있기 위해서 비교대상으로서의 그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용해 먹는거다. 나도 내가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게 참으로 우스꽝스럽지만, 중요한 건 이 전략이 생각보다 내 집중력을 되돌리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딱히 윤리적으로 나쁜 측면도 없다. 그냥 나 혼자 저런 생각을 하면 그만이니까.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많이 집어넣어야 한다. 최대한 많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일단 빠른 시간 내에 프랑스어를 체득해야만 한다. 언어는 세계를 여는 문이다. 내가 하나의 세계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어야 한다. 요즘 프랑스어를 공부한다고 사다 놓은 독일 관념론을 잘 읽지도 못하고 있다. 가끔은 내가 공부는 안하고 언어에만 치중하는 것 같아서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언어고 뭐고 때려치고 내용과 사유에 집중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그 유혹을 참아야 한다. 딱 3개월만 참자고 약속을 했다. 3개월 후에는 조금씩 내용과 사유에 집중해가자. 내가 지금 내용에 집중했을 경우의 2년 뒤 결과와, 내가 지금 언어 체득에 집중했을 때의 2년 뒤 결과는 차이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비록 내가 더 늦은 것 처럼 보이겠지만, 내가 언어를 체득한 이후부터 나의 효율성은 더 높아지게 될 것이다. 성장성장 무조건 성장할 것.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꼭 내가 억지로 공부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변명을 좀 하긴 해야겠다. 난 절대 억지로 공부하지는 않는다. 억지라는 부분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30%정도 된다. 70%의 자발적 추진력에 30%의 강제력이 더해지는 것이다. 물론 70%의 추진력은 아무 분야에서만 발휘되지는 않는다. 나 같은 경우는 철학을 공부할 때 70%가 거의 완전하게 발현된다. 철학을 공부할 때 나는 왠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는 동안 그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와 뭔가를 형성하는 그 와중에, 나는 내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톱니바퀴라면. 내가 아주 꼭 맞는 부품으로서 거대한 기계의 일부가 되어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이 기계가 아닌 다른 기계 속에서는 제대로 굴러간 적이 없다. 하지만 이 기계 안에서만큼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주 힘들이지 않고 스르륵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학문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부좀 한다 싶은 식자층 사이에는 이런 사람들이 꽤나 있겠지만, 전체적인 인구에서 비율을 따지고 보면 이런 느낌은 쉽게 느끼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이 느낌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환희와 같은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됐을 때, 그 감정을 남들도 경험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전도를 한다고 한다. 그 느낌을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아주 약간 이해할 수 있다. 아! 이런 짜릿한 기분을 너희들도 느껴봐야 할텐데! 하는 그런 느낌. 아무튼, 행복에 여러종류가 있겠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굴러가고 있기 때문에, 또 동시에 그것이 나에게 형언할 수 없는 성장감을 선사하기 때문에 행복에 젖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약간의 고통이 동반된 행복이라고 해야하나? 근데 이 때 이 고통은 행복에 대해 길항적인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행복을 더 촉구하는 기능을 하는 것 같다. 행복의 일부인거다. 근데 써놓고 보니 오늘 일기 정말 중심이 없다. 진짜 생각 나는대로 막 찌그린 것 같다. 아무튼 오늘의 일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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