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의 2집 앨범에는 <그때 그 노래>라는 노래가 있다. 주인공은 우연히 구석진 곳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음반을 집어든다. 괜히 한 번 들어보고 싶더라니... 아뿔싸. 노래가 재생되는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여러모로 프루스트의 마들렌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런데 프루스트와 장기하의 사례 둘 다에서 사물들의 역할이 강조되지 않는 점은 아쉽다. 사물은 단지 관문의 역할을 할 뿐, 기억의 주체는 전적으로 인간에 머문다.
이들의 사례에서 진정 기억을 담보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인간의 기억을 사물이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물의 기억 체계 속에 인간이 끼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진정한 기억의 주체는 사물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닐지. 오늘도 쓸데 없는 생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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