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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회식의 계보학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4. 9.

너도나도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 고치지 못하는 관습같은 것이 있다. 나에겐 회식이라는 것이 그랬다. 윗사람 입장에서는 가끔 귀찮기도 하지만 친목을 도모하자니 유지는 해야겠고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상관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나타나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왕관(코로나)을 쓰고 나타나 사람들에게 명한다. 너희 함께 모이지도, 식사도 하지 말지어다. 엄한 아버지가 나타난 뒤에야 서열이 정리되는 아이들처럼, 사람들의 갈등도 정리되기 시작한다. 회식 따위로 쓸데 없는 감정 소모를 벌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 시작은 미미한 바이러스에 불과했으나 그 결과로서 창대한 개인성의 보장이 나타나는 아이러니가 펼쳐진다. 한낱 미물이 인간의 관습을 변화시키는 엉뚱한 계보학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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