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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leugnung]의 글/철학적 단상들

소아성애

by 자급자족 프로닥숀 2021. 4. 2.

좀 무리해서 단순화시켜보자면,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말(말해지는 것)과 사물(보여지는 것) 사이의 '필연적인 것 처럼 보이는' 연결관계가 사실은 전혀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는 A(가령 '사랑의 대상')라고 보이는 것을 A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사실 그것은 그 시대의 담론이, 그 시대의 미세한 권력의 그물망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푸코의 소아에 대한 태도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은 소아성애에서의 '대상' 개념이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라는 것을 인정한다. 소아성애자들 본인은 소아가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무의식은 애정과 성욕의 '대상'을 갖기 마련이며, 그 '대상'이라는 지위 안에서 모든 대상은 평등하게 애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적절한 대상(동성이 아닌 이성, 혼기에 다다른 사람, 인간)'과 '부적절한 대상(동성, 혼기가 아닌 사람, 동물, 혹은 페티쉬적 대상)' 사이의 위계관계는 지우려 노력한다. 68혁명 당시의 스피릿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대상'개념이 '애정과 성욕'의 차원에서만 구성되고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분석가들이 보기에 '소아'라는 대상은 상당한 독특성을 지닌다. 성인이 소아를 성적 대상화하는 과정은, 성인이 비슷한 나이의 성인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맥락화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소아성애자에게 대상은 애정과 사랑이 담긴 리비도의 투여 대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기애적 대상'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이들이 소아를 사랑하는 과정은, 인간이 성인 대상을 사랑하는 과정과 사뭇 다른 역동을 보인다.

 

가설들에 따르면 그들은 소년을 보면서 소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릴적 열등하고 사랑을 거부당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본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애정을 거부당하고 아버지로부터 거세공포를 경험했던 소년의 이미지가 눈 앞의 소아 안으로 온전히 투사(projection)되는 것이다. 그렇게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기에 대한 사랑의 과정이 진행된다. 자기애의 특성이 그렇듯, 타자를 소멸시키고, 자기 수족 부리듯이 착취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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